
숙종 즉위 후 37년간 '갑론을박'
11.6㎞의 산성, 6개월만에 쌓아
韓 불교 성지·기행문학의 보고
학술·종교·문학적 충분한 가치
조선 왕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왕실을 보존할 수 있는 보장처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임진왜란 와중인 1596년(선조 29) 도성의 진산(鎭山)인 북한산에 주목하게 되고, 숙종이 즉위하면서 북한산성의 축성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무려 37년간의 갑론을박을 거친 후 1711년(숙종 37)에 축성이 이루어지는데, 11.6km의 산성을 단 6개월 만에 쌓았다. 중흥의 군주 숙종에 의한 국가통치 시스템의 정비, 상업 활성화 정책의 성공, 토목기술의 발달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북한산성은 한강의 포구가 적의 수중으로 들어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갈 수 없게 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축조한 피난성이다. 한양 도성에 딸린 자성(子城)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종묘와 사직을 설치하지 않고 행궁만을 설치했기에 임시수도의 성격보다는 '왕실 보장처'의 색채가 강하다.
산성 중앙을 가로질러 중성(重城)을 설치하여 1차 차단성을 마련하고, 산성 가장 깊숙한 곳에 행궁을 두었기에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이다. 어쨌든 북한산성은 남한산성과 함께 수도 방어를 위하여 축조됐으며, 화성의 축조와 함께 도성 방어를 위한 4유수부(留守府; 광주, 수원, 강화, 개성)체제가 완료되면서 도성 방어의 한 축이 되었다.
양난 이후 조선 정부는 국가방어 전략을 수도 방위 중심으로 바꾸고, 이를 위하여 서울과 외곽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5개의 군영, 즉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금위영·수어청을 설치한다.
이들 가운데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이 북한산성의 축조와 수비를 맡았고, 총융청이 이를 통솔·관리했다. 이렇듯 북한산성은 남한산성의 수어청과 함께 수도의 간성(干城)이었다.
남한산성의 성벽은 높지만 두껍지는 않다. 활과 창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무기에 의한 전투에 적합한 구조이다. 그에 비하여 북한산성의 성벽은 길이 2척의 돌을 전면 다듬질하고 그랭이 기법으로 쌓아 올린 것으로, 화포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구조이다. 따라서 높이는 낮으나 두터운 편이다.
이런 북한산성의 성벽구조는 수원 화성으로 이어지고, 화성의 축조로 우리나라 성제는 완성된다. 이렇듯 북한산성의 성벽은 남한산성과 화성을 잇는 가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산성의 축조에는 조직력이 강하고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승병이 동원됐고, 축성 이후에는 13개의 사찰과 암자에 배속된 승병들이 도총섭의 지휘하에 성벽을 수비·관리했다. 이런 이유로 북한산성 전체는 불국토라 할 정도로 불교유적이 집중되어 있고, 산봉우리 이름들도 불교식 지명이 지배적이다.
북한산성이 자리한 삼각산은 사대부들의 유람 장소로 널리 애용됐다. 다산 정약용, 성호 이익, 청장관 이덕무 등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들 대부분이 북한산을 찾고, 탐방 이후에는 그 감흥을 시와 산문으로 남겼다. 그런 까닭에 북한산성은 조선시대 기행문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한편, 북한산성 태고사 경내에는 원증국사 태고 보우(普愚, 1301~1382년)의 탑(보물 제749호)과 탑비(보물 제611호)가 있으며, 그가 주석하여 후학을 지도한 중흥사가 있다. 그가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로 추앙받은 사실을 감안할 때 북한산성은 한국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만기요람' 등 문헌기록에는 북한산성의 축성과 운영에 관한 풍부한 내용이 기록돼 있으며, 북한산성의 모든 것을 기록한 인문지리지인 '북한지'에는 북한산성의 전체 조감도가 들어 있어 건물이나 봉우리 등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또 1910년대 전후에 촬영한 행궁과 중흥사 등 주요 건물의 사진이 있어 원형 복원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아울러 북한산성은 오늘날 연 1천만 명 이상이 찾는 수려한 경관을 지닌 북한산에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북한산성은 군사적 중요성 만큼이나 학술적·종교적·문화적·민속적·사회사적 가치도 높다. 또한 남한산성, 수원 화성, 강화성 등과 도읍 한양을 방위하고 왕실을 보존하기 위하여 축성되었다. 그런데 현재 남한산성과 화성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따라서 수도방위체제라는 연결망을 감안할 때, 북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또 조선후기 수도방위체제라는 큰 틀에서 볼 때 한양도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이 되어야 마땅하다.
경기도의 적극적인 지원, 도민의 애정 어린 관심, 서울시와의 긴밀한 유대 등을 통해 북한산성을 2018년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올리고, 2022년 등재하려 애쓰는 경기문화재단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경기도에 또 다른 세계적 역사문화공간이 탄생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