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의료기기 갈등'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치료가 아닌 '진단'
부작용 우려땐 法 정비·교육 대책… 사용자체 막는것은 과잉규제
"치료보다는 보양" 한의에 대한 대중 인식 '스쿨닥터' 활용해 개선
군·교정시설·보건소 등 한의사 영역 확대… 공공의료 한발짝 더
환자에 대해 의사가 지켜야 할 윤리를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의술의 빛을 보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 집필된 동의보감에는 절대 언급되지 않을 법한 일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양의과 한의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X레이와 초음파, 혈액검사기기 등 환자 상태를 진단하는 데 필요한 기기들을 한방 병·의원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골자지만, 그 이면에는 양의와 한의의 세계관 차이로 인한 두 집단의 오랜 알력이 내포돼 있다. 다툼의 주축은 의사회와 한의사회다.
두 단체의 정관에는 하나같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이라거나 '국민과 하나 되는…'등 공공의 건강을 최우선 한다는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두 단체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기본원리 아래 너무나 상이한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의료기기 회사에 상대 기관과 거래를 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하다 공정위에 과징금 처분을 받는가 하면, 사스나 메르스 같은 대규모 전염병을 앞에 놓고도 대응 방식의 차이에 갈등을 빚기도 한다. 싸워야 할 대상을 질병이 아닌 상대 단체로 삼은 셈이다.
도저히 융합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집단의 평균대 싸움에서 국민들은 한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초 한국리서치가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전체의 65.7%가 한의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찬성의 의견을 표했다.
X레이 검사를 한의원에서 직접할 수 없다 보니 통증 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방문하더라도 다시 정형외과에 들러 X레이를 찍은 뒤 한의원을 다시 방문해야 하는 등 불편이 환자에게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의계는 전공분야가 다른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오진으로 되레 국민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절대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한의계는 X선을 발명한 뢴트겐이 의사가 아닌 물리학자이듯 기술 사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한의학 전공 과정에서도 진단기기와 관련된 교육을 충분히 받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으로 반박하고 있다.
과연 한의사들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충분한 준비가 되었으며 우려되는 부작용은 없을까. 박광은(52) 경기도한의사회장을 만나 현재 한의계의 문제점과 이슈에 대해 물었다.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 수년째 장기화되고 있다. 논쟁이 고착되니 일각에선 의사와 한의사 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는 시각도 커지고 있다. 한의사회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규제 개혁의 일선에 있으면서 그런 국민들의 피로감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기본적인 원리를 이야기할 뿐이다. 목욕탕에도 혈압계가 비치되고 낚싯배도 초음파를 사용하는 시대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진료가 아닌 진단이다. 환자가 통증을 호소할 때 근육이 경직된 것이 문제인지, 혹은 미세한 골절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알고 나서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진단의 방법은 다양할수록 그 정확도가 올라간다. 한의원에 의료기기가 들어온다고 해서 한의사들이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의료기기에만 의지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진단기기는 맥진과 촉진으로 파악한 환자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수단인 동시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환자의 불편을 줄여주는 매개일 뿐이다."
-양의쪽에서는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에 부작용을 우려한다.
"부작용이 우려되면 관련법을 정비하면 되고 사용에 대한 교육을 더욱 철저히 하면 된다. 그러나 사용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엄연히 과잉 규제다. 같은 논리로 양의의 한의의 맥진을 이용해 환자를 진단한다고 해서 우리가 반대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확실하다. 한의원은 엄연한 1차 의료기관이다. 수십만원 짜리 약을 팔며 보양 쪽에만 치중하던 때는 옛말이다. 한의원도 건강보험공단이 지정한 수가에 따라 정해진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의원이며 그 수는 전체 의료기관의 3분의 1에 달한다. 그런 기관이 간단한 진단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한의에 대한 대중의 의식도 문제가 될 듯하다. 특히 청년층은 한의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
"맞는 말이다. 한의학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지속하는 경제 위기로 의료시장 자체가 줄어든 점, 한의학 의료 수가가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점, 정치적으로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관련 지원정책이 부재한 점이 대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것이 내부적인 문제다. 지금은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의학의 주축이 보양에서 치료의학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다소 늦은 게 사실이다. 의료 환경 변화를 미리 예상하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 맞은 위기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한의학도 양의처럼 제도권으로 편입해 급여 체계를 확실히 하고 의료행위의 다양화를 꾀했어야 했는데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 이에 젊은 세대는 아직 한의원에 가는 것이 치료가 아닌 보양이고, 비싼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중의 인식 전환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한의사회도 다양한 자구책을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의(校醫), 즉 스쿨닥터다. 한의사 한 명이 한 학교를 전담해 염좌와 타박상, 생리통 등 한의학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와 금연침, 비만 관리 등 청소년 건강 관리에 필요한 한의학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이 자라서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을 때 한의원을 떠올리길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때문에 의료봉사와 함께 학생들에게 한의학에 대한 기억을 자연스레 심어주자는 것이다. 올 하반기에 경기도 노인복지기금공모사업을 통해 경로당에 한의사가 방문, 한의상식을 전해주는 사업이 벌이는데 같은 취지다. 그간 한의학계에서 부족했던 것은 환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때문에 다양한 사업을 통해 환자들을 직접 대하고, 이를 통해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을 더욱 널리 알릴 생각이다."

-3년 임기 중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구상한 사업의 진행 상황과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남은 임기 중 가장 큰 목표는 한의학이 공공의료에 한발 더 다가가는 것이다. 우선 군의관이나 공공기관 상주 의사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도청의 경우 직원들의 질환을 전담하는 한의사가 지정돼 있는데, 사무직 근무로 인한 통증 질환이 늘어나는 추세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 호응이 매우 좋다. 최근 의정부 도 북부청사에 전담 한의사가 새로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으로 군이나 교정시설, 각 보건소 등에 한의사가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면 국민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고 한의학의 위상도 다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의료분야에서 역점을 두는 사업이 있다면….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이 한의학 난임치료사업이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한의학적 치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수원과 성남 등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의학 난임치료는 양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좀 더 많은 환자들이 복지정책의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수원에서 실시한 한의학 난임치료사업에서 28명의 환자 중 11명이 임신에 성공하는 등 효과도 입증됐다."
-회원들인 한의사들의 요구도 많을텐데.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한의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는데 회원들의 관심이 높다. 현재 성인 환자가 허리에 침을 맞고 뜸과 부항치료를 받을 경우 수가는 7천 원 남짓에 불과하다. 한의원을 자주 찾는 65세 이상의 고령 환자의 경우 수가는 1천500원 가량으로 더욱 낮다. 이런 상황에선 새로 개업하는 청년 한의사들이 희망을 갖고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물론 수가가 정상화 되는 만큼 한의원도 처방을 통일하고 제도권 의학으로 편입하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처방 통일 등은 다수의 한의사들이 이미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라 보건복지부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박 회장은 지난 달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꼽히는 시에라리온 공화국에 다녀왔다. 국제평화의료재단과 함께 현지에 병원시설을 세워주기 위해서다. 이뿐 아니라 한의사들로 구성된 해외 의료봉사 단체 '콤스타'는 라오스와 필리핀 등 각국을 다니며 한의학을 통한 의료의 손길을 널리 뻗치고 있다.
박 회장은 의료기반이 약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일수록 한의학의 강점이 더 크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환자들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이나 소화계통의 불편을 호소하는데 의료장비와 약물 등이 필요한 양의와 달리 침과 뜸, 부항 등 한의기구는 편의성이 뛰어나 더 많은 환자에게 수혜를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양의의 강점이 두드러지는 분야가 있는 반면 한의가 빠른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역도 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되는 것이 바로 국민이 원하는 바 아니겠느냐"며 "앞으로도 공공건강을 위해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의학의 달라진 면모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겠다. 꾸준한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박광은 경기도한의사회장은?
-1983년 대구 성광고등학교 졸업
-1989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1998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박사 학위 취득
-1999년 포천중문의대 한의학 주임교수
-2015년 경기도한의사회 회장 취임
-2016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글/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