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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예술/외설의 정의는 아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뜨거운 미스터리다. 우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다 예술적 외설과 외설적 예술 사이를 오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외설의 정의는 제각기 관점과 입장을 달리하는 간주관적인(intersubjective)인 것이기에 이 논란은 한참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설(obscenity)은 특정 범주의 어휘들, 특히 성행위나 해부학적 부분의 이름들과 관련이 있으면서 정치성과 역사성을 갖는 문화현상이라는 게 뤼시엔느 프라피에-마쥐르의 주장이다. 문화로서의 외설은 프랑스 대혁명기 귀족들을 공격하고 희화화하기 위해 부르주아지들이 창안해낸 정치풍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은 질서유지와 윤리를 무기로 말초적 욕망을 자극하는 성-상품들 혹은 전위적 성-예술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관리해왔다. '사드'의 '소돔 120일',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염재만의 '반노',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의 해봐' 등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작품들이다.

'채털리 부인'은 외설-예술 논쟁의 대표 사례일 뿐 더러 문학의 탈신화화와 모더니티의 허구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채털리 부인'은 1928년 최종본이 나온 이래 부침을 겪다 1959년을 기점으로 국가와 예술인들이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진보성향의 정치인 로이 젠킨스(Roy Jenkins)가 음란물 출판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팽귄 출판사가 '채털리 부인' 무삭제판을 전격 출판한다.

성불구자가 된 귀족 출신의 상이군인(클리퍼드)이 아내(코니)와 사냥터지기(맬러스)에게 농락(?)당하는 이야기에 분노한 영국보수주의자들은 작품을 외설 혐의로 기소했고, 예술가들이 반발하며 판이 커졌다.

쟁점은 '채털리 부인'이 과연 외설인가, 예술인가였다. 즉 외설물이라면 무엇이 외설이고, 예술이라면 무엇이 예술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사법부로서는 '채털리 부인'을 음란물로 의법조치하기 위해서 음란물이란 무엇이며 문학과 외설물은 어떻게 다른가를 밝혀야 했고, 문화이론가들과 영문학자들 역시 외설 논란을 초월하는 문학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제시해야 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으나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어느덧 재판은 본말이 전도되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따지고 묻는 문학에 대한 정의를 둘러싼 문학논쟁으로 변질(?)돼 버렸다.

'채털리 부인'은 성(담론)의 해방, 성을 매개로 펼쳐지는 계급갈등, 문학적 표현의 한계 등 동시대 영국사회의 과제와 사회적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유의미한 지표이자 문학의 위상과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게 한 일대의 사건이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