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평 출생 13세 출가 37세 깨달음
元유학 공민왕때 왕사·국사 책봉
태고사 원증국사탑·비 국가 보물
고려후기 4각·8각·원형 조화 우수
북한산성 내 태고사(太古寺)에는 국가지정 보물 2점이 있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와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이 그것이다. 또 양평 사나사(舍那寺)에는 사나사원증국사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과 사나사원증국사석종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가 있다.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사나사 원증국사탑비는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 지었다. 또 태고사 원증국사탑비에는 태조 이성계와 최영 장군이 그의 문도(門徒)로 새겨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태고 보우(1301~1382년)의 정치사적, 불교사적, 미술사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보우는 1301년 외가인 양평에서 태어났으며 13세에 출가하여 회암사(檜巖寺) 광지(廣智)의 제자가 되었다. 30살에 용문사 상원암에서 용맹 정진했으며, 37세에 불각사(佛脚寺)에서 '원각경(圓覺經)'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
42세인 1341년에 삼각산 중흥사(重興寺) 주지로 있으면서 후학들을 지도하였고,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太古庵)을 창건하여 5년 동안 주석하였다. 이때 중국 영가대사(永嘉大師)의 '증도가(證道歌)'를 본떠서 유명한 '태고암가(太古庵歌)'를 지었다.
1347년에 원(元)에 유학하여 임제(臨濟)의 18대손인 석옥청공(石屋淸珙)의 법을 이었는데, 순제(順帝)에게서 법의(法衣)를 하사받기도 했다. 49세인 1348년에 귀국하여 중흥사에 머물다 도를 더욱 깊이 하고자 양평군 소설산(小雪山)으로 들어가 4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보임(保任)하였다.
1356년 공민왕이 참석한 봉은사 법회를 주관하고 왕사에 책봉되어 원융부(圓融府)를 중심으로 선문구산(禪門九山) 통합 운동을 하였으며 신돈에 의해 속리산에 금고당하기도 하였으나 신돈 실각 후 국사에 책봉되었다.
그러던 1382년 여름, "돌아가자, 돌아가자." 하고는 곧 양평 소설암(小雪庵)으로 돌아와 12월 17일에 8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보물 제749호로 지정된 그의 탑은 받침돌, 몸돌, 지붕돌, 상륜부(相輪部)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각형·8각형·원형 등 여러 단면의 부재들이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서, 고려 후기에 건립된 승탑 가운데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보물 제611호인 그의 탑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용머리 모양의 머릿돌을 세웠는데, 1760년 영조가 비문에 태조 이성계의 이름이 적혀 있다하여 비각(碑閣)을 세워 보호토록 한 것이 '조선왕록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태고 보우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입적했다. 양주 회암사에서 출가했으며, 동두천 소요산의 백운암에 머물면서 유유자적하기도 했다. 삼각산 중흥사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태고사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의 탑과 탑비는 북한산성 태고사와 양평 사나사에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그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스님이라 할 수 있다. 또 그는 사분오열되었던 고려말기의 불교를 원융(圓融)의 정신으로 통합하여, 한국불교를 특징짓는 통불교(通佛敎)의 정신을 되살린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과 태고종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되고 있다.
한편, 그가 고려말 정치적 혼돈기에 부패 권력과 밀착한 권승(權僧)이라는 평가를 받고, 일각에서는 그를 조계종의 조종(祖宗)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서 이런 부정적 측면도 감안되었으면 한다.
북한산성은 그의 행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가 주석하였던 중흥사와 태고암, 그리고 그의 탑과 탑비가 북한산성 내에 있다.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봉의 이름도 그에게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북한산성 내에 있었던 원각사와 상원암도 그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그는 북한산성을 상징하는 고승이고, 한국불교에서 중시조와 같은 존재이며, 경기도에서 출생·활동·입적한 경기도의 인물이다. 이런 태고 보우의 치적과 북한산성 내의 그의 흔적들은 북한산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에 힘을 보탤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런 이유로 그에 대한 심층적 연구와 적극적인 현양사업을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