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식사지구 등 개발 주도한 '베테랑'
주민 커뮤니티 확보 '미래형 주거' 일궈
조광호(60) 씨는 토기장이다. '도시'가 사람이 살아가는 그릇이라면, 조 씨는 그 그릇을 빚어내는 도시계획기술사다.
국내 최초 민간개발사업으로 이뤄진 고양식사 도시개발사업지구 도시계획을 주도한 그는 지난 1980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을 시작으로 산업입지국·토지국·도시국에서 근무하다가 도시계획기술사가 되면서 공직을 떠났다.
이후 폐광지역 재활 프로젝트인 강원 카지노리조트, 전라남도청 이전을 위해 개발된 남악신도시, 여수웅천 택지개발사업지구, 식사지구 등 대형 사업의 프로젝트매니저를 수행해 왔다.
연구보고서만 써왔던 조 씨가 최근 책을 펴냈다. 평생의 150여개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집대성한 '어번플래너 조광호의 도시와 인생'이다. 지난 주말 그는 자신의 땀과 혼이 서린 식사지구 앞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지나간 세월을 회상했다.
무허가 공장과 매연, 빈번한 화재사건으로 악명 높았던 식사지구 일대는 지금 미래형 주거단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식사지구에서 가장 주력한 것은 '주민 간 커뮤니티'였어요. 요즘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는 아파트단지가 많지만, 식사지구는 차원이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보통 아파트가 지어지면 1개 단지에 500~700세대가 구성되는데 식사지구는 슈퍼블록 방식으로 단지에 1천~1천500세대가 살도록 했죠. 이 덕분에 커뮤니티 시설 운영비용이 수월하게 확보돼 피트니스나 도서관·찻집 등의 대형화가 가능했고, 운영 또한 제대로 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식사지구는 주민들끼리 교류가 자연스럽게 성사되면서 크고 작은 모임이 많이 만들어 졌어요."
도시계획가로 이름을 떨친 이면에 좋았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한읍에 카지노리조트를 건립하려던 정부 계획에 대해 반대할 때 일화다.
"고한읍 건립 예정지는 땅 밑에 거대한 동굴이 있고 석탄층이 많이 노출돼 있었어요. 비교적 지반이 안정된 사북읍에 카지노리조트를 세워야 한다는 브리핑을 하는데 누군가 도끼를 들고 주변에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야말로 목숨 걸고 추진한 프로젝트였죠.(웃음)"
조씨는 미래를 이어갈 후배들에게 이론보다는 실무 경험을 들려주고 싶어 책을 썼다고 했다. 프로젝트마다 소위 인생을 걸어왔다는 그는 "이제 손에서 일을 놓고 봉사하는 삶을 살려 한다"며 미소 지었다.
고양/김재영·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