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문 연 '한국 3대 재즈클럽' 중 한 곳
1910년대 셔츠 등 팔던 '후루다 양품점' 자리
일본식 기와 합각지붕에 외관은 서양식으로
내부에 기둥 안세운 '왕대공 트러스 구조' 희귀
높은 천장·흙벽 탓 소리 깊어 연주가들에 인기
LP판 수천장·턴테이블 등 '빈티지' 감성 더해

1983년 문을 연 이후 33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버텀라인은 건물의 나이만큼은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재즈클럽 중 하나다. 버텀라인 건물에는 1910년대 인천의 대표적인 상점 가운데 하나인 '후루다(古田) 양품점'이 있었다. 양품점이란 셔츠, 넥타이, 모자, 지갑 등 값비싼 서구 물품을 파는 상점이다.
인천 제물포는 1883년 개항으로 인해 서구 문물이 우리나라로 가장 빨리 들어오는 통로였다. 중국과 일본에 진출해 있던 유럽이나 미국의 상사, 중국인, 일본인 등이 제물포로 몰려와 사업을 펼치면서 상업이 번성했다.
후루다 양품점은 1920년대 중구 내동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한 '대동상회(大東商會)'에 밀리기 전까지 인천에서 장사가 가장 잘되는 상점이었다고 한다. 후루다 양품점 맞은 편에는 '오카다(岡田) 시계점'이 있어 축음기와 음반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전해진다.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에서 당시 최신 유행이 소비되던 공간인 양품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일본식 기와를 올린 합각지붕에 3층짜리 목조건물인 버텀라인은 개항기 다른 상점과는 달리 외관을 서양식으로 꾸몄다. 서양식 건축양식이 선진적이고 세련됐다고 인식한 당시의 시대 분위기가 반영돼 상점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내부 또한 근대 상가 건축물에서 찾아보기 드문 독특한 구조라는 게 건축 전문가들의 평가다. 건물 지붕틀은 중앙에 수직재를 중심으로 직선의 목재를 삼각형으로 조립, 하중을 분산시켜 지탱하게 하는 왕대공 트러스(king post truss) 구조다. 건물 내부에 기둥을 사용하지 않아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활용할 수 있는 공법이다.
국내에 있는 근대 공공건물에서는 왕대공 트러스 구조를 사용한 경우가 있지만, 근대 시기에 왕대공 트러스 공법으로 지은 상가건물은 희귀해 버텀라인이 건축가나 건축학도들의 단골 답사코스가 되기도 한다.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는 "일본식 근대 상가주택은 1층에서 장사하고 2층은 주거공간으로 쓰는 게 보통"이라며 "트러스 구조로 2층에 기둥을 넣지 않은 점으로 볼 때 2층도 주거공간이 아닌 상점으로 쓰였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근대 건축 전문가인 손장원 재능대학교 교수는 "버텀라인 건물은 세월이 흐르며 다소 변형되긴 했지만, 일본식 근간으로 서양식 건축양식을 도입한 사례"라며 "근대 건축물로서 가치도 크다"고 했다.
근대건축물과 재즈의 결합이 풍기는 고풍스럽고 '블루지(bluesy)'한 분위기에 매료된 국내외 유명 재즈 연주자들은 자청해서 버텀라인 공연을 하고자 한다.
올 10월 국내 재즈페스티벌 공연을 위해 방한할 예정인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재즈 베이시스트 앙리 텍시에 호프(Henri Texier Hpoe)도 허정선 버텀라인 대표에게 먼저 연락해 버텀라인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높고 단단하게 짜인 천장과 황토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연주는 그 울림부터가 다르다는 게 재즈 연주자들의 평가다.

허정선 버텀라인 대표는 "기계적으로는 고급 음향시스템을 갖추고 있진 못하지만, 이곳에서 공연한 뮤지션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소리의 울림이 깊어 연주가 매우 만족스럽다는 것"이라며 "높은 천장과 흙벽 등 자연적인 건축 소재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허정선 대표는 "근대 건축물이라는 운치 있는 연주공간에서 공연하고 싶어하는 욕구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래 손님으로서 버텀라인을 자주 찾았던 허정선 대표는 1993년 이곳을 인수해 23년째 운영하고 있다. 바깥쪽으로 유리창을 낸 것을 제외하면, 건물에 거의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굳이 인테리어에 공들이지 않아도 벽면을 가득 메운 수천장의 LP판과 30년 넘은 턴테이블 등이 근대 건축물의 목조와 어우러져 '빈티지(vintage)'한 감성을 자아냈다.

지난 1일 밤 버텀라인에서 만난 단골손님인 사진작가 김보섭 씨는 "100년이 넘은 건물도 역사지만, 30년 넘게 인천을 대표하는 재즈클럽으로 남아있는 버텀라인 자체도 이제는 역사"라며 "앞으로도 그 역사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즈클럽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33년째 꾸준히 찾고 있는 중·장년층은 물론 최근에는 젊은층의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서로 다른 세대가 음악을 매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근대 건축물이라는 것이 버텀라인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라는 게 허 대표의 생각이다.
허정선 대표는 "버텀라인이란 이름은 첫 번째 주인이 미국 뉴욕에 있는 유명한 재즈클럽 이름을 딴 것인데, 세계적인 고층 빌딩 숲인 뉴욕 맨해튼에도 군데군데 허름한 재즈클럽 같은 옛 건물이 공존하고 있다"며 "버텀라인도 세월이 지나고, 인근이 개발되더라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는 근대 건축물이자 문화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사진 =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