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사직 안갖춘 '피난용 궁궐'
왕실문서 보관한 '사고' 역할도
1915년 집중호우로 매몰 됐지만
내·외전 구조 드러나 복원 가능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은 왕실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필요했고 그래서 북한산성을 숙종 37년(1711년)에 축조한다. 그리고 피난 시 왕이 머물 수 있는 북한산성 행궁, 일명 북한행궁을 산성이 축성된 다음 해인 1712년에 건립한다.
남한산성과 남한행궁이 있지만 한강의 포구가 적의 수중에 들어갔을 때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행궁(行宮)이란 글자 그대로 임금이 행차하여 머무는 임시궁궐인데, 북한행궁은 임시궁궐보다는 피난용 궁궐로 만들어졌다.
이는 왕실을 상징하는 종묘와 사직을 갖추지 않은 점으로 알 수 있다. 참고로 임시궁궐이라 할 수 있는 남한산성 행궁에는 종묘와 사직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좌전과 우실이 갖추어져 있다.
북한산성 행궁은 임금이 집무를 보는 정전(외전)을 앞에 두고, 뒤에는 침전(내전)을 배치함으로써 전통적인 궁궐건축물의 배치원칙인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원리'를 만족시킨다. 규모는 내전 정전이 28칸, 외전 정전이 28칸, 부속건물 68칸 등 총 124칸 정도였다.
행궁의 관리는 1712년 산성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설치된 경리청(經理廳) 소속의 관성장(管城將) 1원(員)이 담당하였고, 행궁의 수직은 관성소(管城所) 소속의 행궁군사 2인이 맡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북한행궁의 기능도 다양해져, 왕실 족보를 보관하기 위한 보각(譜閣)을 두게 된다.
또 고종대에 이르면 사고(史庫)로 전용되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왕실의 어제나 어보, 어책, 의궤를 비롯한 중요 유물들을 보관하게 된다. 이렇듯 북한행궁은 조선 왕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피난처였다.
1912년 1월 8일, 순종(純宗)은 조선총독부의 요청을 받아 북한행궁의 사고 건물을 10년간 영국 성공회에 대여해 준다.
그런데 최근 발견된 당시 주교의 편지에는 "우리는 월세 내는 것을 대신해서 행궁을 수리 보존하기로 하였고, 매년 여름 이 곳은 더위를 피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어, 행궁 전체를 자신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런 사실은 유니언 기(Union flag)를 행궁 내전에 걸고 대청마루에 앉아 독서를 즐기는 성공회 일행들의 사진이 발견되어 분명한 사실임이 확인되었다.(본지 2015년 7월 14일자 '영 성공회 피서지가 된 북한산성 행궁' 참조) 어쨌든 그렇게 유지되던 북한행궁은 1915년 북한산에 내린 집중호우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 새천년을 맞이할 때까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런 북한행궁이 경기문화재단과 고양시의 노력으로 원래의 위용을 되찾고 있다. 2007년 고양시의 노력으로 국가사적 제479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경기문화재단에 의하여 '북한산성 행궁지 종합정비기본계획'이 수립되었으며, 2012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문화재연구원이 연차발굴을 실시하고 있다.
조사결과 1915년 산사태로 매몰된 내전과 외전의 하부구조가 온전하게 발굴되었으며, 왕실 문서를 보관했던 사고(史庫)로 추정되는 건물도 확인되었다.
발굴로 드러난 북한행궁의 전모는 놀라웠다. 내전과 외전의 기단, 왕이 지나는 길인 어도(御道), 기둥을 받치던 주초석(柱礎石), 기단으로 오르는 계단 등이 매몰 당시의 모습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온돌은 구들장 위에 두텁게 바른 황토바닥이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였고, 기단과 주초석에 사용했던 석재들은 재사용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을 만큼 보존 상태가 좋았으며, 거의 대부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렇듯 북한행궁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로 발굴되었는데, 이런 경우는 건축유구에서 매우 드문 것이어서 북한행궁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북한산성 행궁지는 북한산성 내에서 가장 아늑하고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또 국립공원 내에 자리하여 원형을 거의 간직하고 있으며, 최근 발굴로 그 구조가 명확하게 밝혀진 상태이다. 1910년 무렵에 촬영한 사진들이 여러 장 전하고 있어 원형복원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요컨대 복원을 위한 모든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을 비롯한 관계기관의 관심 속에 복원이 이루어져, 북한산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에 일조하는 한편, 북한산성을 찾는 탐방객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어쨌든 북한산성 행궁의 복원은 등산지로만 각인되어 있는 북한산성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