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양식·이론 집대성… 방어기능 극대화
거중기·녹로·유형거 활용 '단 3년'만에 완공
■ 수원화성이란
화성은 조선 후기 정조대왕이 1794년 착공해 1796년 완공했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 묘를 화성 현륭원으로 옮기면서 배후 도시 기능을 하도록 만든 계획도시다.
또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성곽 건축사업중 가장 큰 규모로 서울 왕궁의 남부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시설이면서 민간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성문을 설계했고 물산이 유통되도록 성 안과 밖에 상업시설을 만들었다. 민생을 중시한 도시설계로도 유명하다.
특히 수원화성은 가장 최근 만들어진 성곽으로 우리나라 성곽 건축기술이 집대성됐다. 돌로 쌓은 높이 5∼8m, 둘레 5천744m의 성곽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 수원화성의 구성
수원화성의 지세는 서쪽에 팔달산과 동쪽에 구릉이 있는 동서가 높은 지형으로 그 사이에 수원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동서남북에 4대문을 건설해 방어기능을 하고 팔달산 정상과 동쪽 구릉에 장군이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를 배치했다.
성곽 모서리에는 적의 동정을 살피는 망루 역할의 공심돈을 설치했고 수원천 남과 북 2곳에 수문을 만들었다. 연기로 신호를 보내는 통신시설인 봉돈은 동쪽 높은 구릉에 위치했고 성곽 깊숙한 곳에는 몰래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는 암문이 5개 있다. 당초 48개 시설이 설치됐으나 현재 40여개가 남아있다.
■ 수원화성의 특징
수원화성은 18세기 최고의 과학기술이 동원된 성과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설계와 건축 과정에 당시 동서양의 모든 성곽 양식이 적용됐다. 왕의 명령을 받은 젊은 학자들이 중국과 일본, 유럽의 성곽을 참조해 한국적 지형에 맞게 설계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수원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며 "동서양 군사시설 이론을 잘 배합한 독특한 성으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학자들은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거중기, 돌을 들어 옮기는 녹로, 수레를 개량해 많은 짐을 옮길 수 있게 한 유형거, 건축자재를 나르는 동차 등을 개발해 공사기간을 단축했다. 이 공사를 3년 만에 완성했다. 현대 기술과 장비로도 어려운 일이다.
수원화성 건설에 참여한 다산 정약용, 반계 유형원 등 정조 대에 등용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실사구시 학풍이 만들어낸 결과다.
/김대현·김범수기자 kimd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