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토박이 2대째 가업
장날 한번도 쉰적없어
배달 일 힘에 부쳐도
장터 전통 후대 남길
이번 장터사람들의 주인공은 일산에서 태어나 지금껏 쌀농사 지으며 2대째 쌀장사로 가업을 잇고 있는 남편 박장필(70) 씨와 아내 이종림(70) 씨. 박 씨도 그의 부친도 일산초교 졸업생이고 일산 토박이다.
보릿고개 시절, 쌀은 귀한 작물이었고 아무나,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젠 넘쳐나는 먹을거리 탓인가. 쌀이 천대(?) 받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쌀장사를 고집하며 살아온 세월이 44년. 아버지에게 싸전을 물려받았을 때 1천원이던 쌀 1말(8kg) 값이 지금은 2만3천원 한다.
박 씨는 "쌀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30가마도 팔았는데 지금은 그 반도 못 판다"며 "예전에는 쌀장사만으로도 자식들 먹이고 키우고 가르칠 수 있었는데 지금 장사로는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70~80년대 한창 때와 같은 팔림새는 아니지만 부모님이 하실 때 부터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많아 문을 닫을 수가 없다. 쌀을 사러 나오기도 하지만 말동무라도 할 마음으로 쌀가게를 찾아와 얼굴도 보고 놀다가 가신다. 그래서 장날에는 한번도 쉰 적이 없다.
이들 부부가 팔고 있는 곡물은 30여 가지인데 대부분 국내산을 취급한다. 다만 메조, 동부(콩), 녹두, 적두(팥), 참깨, 깐 메밀, 기장(조) 등의 곡물은 수입품이다. 싸전에 밀고 들어 온 값싼 수입곡물을 볼 때 마다 농부였던 박씨 부부의 마음이 편할리 없다. 하지만 그게 시장논리라니 그렇다 여길밖에···.
쌀장사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배달이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만 있는 곳은 배달이 몇 배로 힘이 더 든다. 박 씨의 부친은 아들 걱정하는 마음으로 오토바이를 배우지 못하게 해 처음엔 쌀 배달을 자전거로만 했다. 90년대에 들어서 겨우 자격증을 취득해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게 됐다.
오랜 세월 무거운 곡물자루를 들고 나르고 하는 반복적인 생활로 근육은 빵빵하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이 허리와 관절은 통증 가실 날이 없다. 그래도 일산 장터는 오고가는 사람들과 인연이 되어 정을 나누고 먹고 살아온 평생의 삶의 터전이다. "100년의 역사와 전통이 후대까지 전해져 따뜻한 정을 나누고 행복바이러스가 넘치는 일산장터가 됐으면 해." 박 씨 부부의 바람이다.
/이수길 다큐멘터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