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절개지 전경
고려시대에 축성된 중흥산성(사진의 하반부)과 그 위에 쌓아올린 북한산성의 성벽. /경기문화재단 제공

시기도 우왕대가 아닌 전기 추정
성벽 길이 12.7㎞ → 11.6㎞ 정정
99.3%가 고양 '경기도 산성' 입증
4년 조사 새로운 사실 속속 확인


2011년 12월 경기도, 고양시, 경기문화재단이 북한산성을 조사·연구·보존·활용하기 위하여 업무협약(MOU)를 맺고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을 신설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2년 부터 북한산성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진행됐다. 경기문화재연구원 조사단의 노력으로 학술성과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이 드러났다.

2013년까지 북한산성 성벽의 길이는 12.7㎞로 알려졌고, 모든 책자와 인터넷 정보에 그렇게 소개됐다.

그러나 정밀측량 결과, 전체 둘레가 11.6㎞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냈다. 또 성벽이 축조된 구간이 8.63㎞,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성곽을 축조하지 않은 구간이 2.97㎞라는 정확한 수치도 확보했다.

아울러 북한산성 내부의 총면적 527만㎡ 중 경기도 고양시에 속한 면적이 523만㎡로 전체의 99.3%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전체 11.6㎞ 중에서 고양시 구간이 8㎞로 69%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북한산성이 '경기도의 산성'임을 일깨워주었다.

성벽에 대한 조사에서는 순찰을 위한 회곽로(廻郭路)의 일부가 발굴됐다. 기본적으로 성벽 위에 넓은 판석을 깔아 기초부를 마련한 다음 마사토와 진흙을 2~3차례 번갈아 다져 걷기에 편하면서도 배수가 잘 이루어지도록 한 구조였다.

이런 회곽로의 발견은 북한산성의 탐방로를 원형에 가깝게 친화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지'등 문헌에는 지금의 초소(哨所)격인 성랑(城廊)이 143개소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런 성랑에 대한 성격도 최근 발굴로 밝혀졌다. 그것은 대문이나 암문에 가까운 주요방어시설 주변에 입지하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건물이며, 정면만 개방되어 있고 측면과 후면은 폐쇄 구조라는 사실 등이다.

조사단은 2시간 30분을 등반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나한봉치성(해발 688m)에 대한 발굴조사도 실시했다. 그 결과 화포를 쏠 수 있는 포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포루보다는 감제(瞰制)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밝혀냈다. 이로써 북한산성 내에 10개소 정도 설치되었던 치성(雉城)의 기본적인 구조를 밝혀낼 수 있었다.

증취봉 아래에 대한 성벽조사에서는 1711년(숙종 37)에 축성된 지금의 북한산성 아래에서 그 이전에 쌓은 것이 확실한 성벽의 일부를 발견했고, 그것이 고려시대에 쌓은 중흥산성(中興山城)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그 축조시기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고려 우왕(禑王)대가 아니라 고려 전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을 출토 유물을 통하여 추정해 냈다.

이외에도 성 내부의 물을 성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성 기저부에 마련한 수구(水口)를 발굴했으며, 수문 좌우에 남북으로 돈대를 설치했던 사실도 문헌을 통해 확인하고 그것을 현장조사로 검증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산성 행궁에 별도로 설치했다는 북한산성 사고(史庫)로 추정되는 건물터를 발견해 현재 발굴 중에 있다.

이 모든 학술자료는 만 4년 동안 고고학적 조사로 거둔 결실로, 앞으로 지속적인 조사가 진행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학술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해 준다. 혹자는 북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세계유산 등재 기준을 놓고 볼 때, 북한산성의 가치는 남한산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경기문화재단이 2000년대 중반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다. 표면에 드러난 남한산성의 가치만을 두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한산성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산성의 진정한 가치를 안다면, 현재 북한산성이 저평가되어있다는 것을 인정하리라 믿는다. 섣부른 속단보다는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북한산성 바로알기'를 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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