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변(海邊)에 살기
1. 소성(邵城)은 해변(海邊)이지요
그러나 그 성(城)터를 볼 수 없어요
차고 찬 하늘과 산이 입 맞출 때에
이는 불길이 녹혔나 보아요
2. 고인(古人)의 미추홀(彌鄒忽)은 해변이지요
그러나 그 성(城)터는 보지 못해요
넘집는 물결이 삼켜 있다가
배앗고 물러갈 젠 백사(白沙)만 남아요
3. 나의 옛집은 해변이지요
그러나 초석(礎石)조차 볼 수 없어요
사방으로 밀쳐 드난 물결이란
참으로 슬퍼요 해변에 살기
-고유섭(1905~1944)
한국미술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이 고향 인천을 향한 정을 '미학의 개척자'답게 그려 냈다. 늘 거닐던 백사장, 파도가 이는 그 찰나의 순간에 2천 년의 세월을 담았다. 비류 백제의 전설 미추홀의 흔적은 찾을 길 없건만 그 세월, 파도는 해변의 모래를 삼키고 뱉기를 쉬지 않았다. 우현은 그의 호(號)가 말하듯 가물가물하게 먼 과거에 한참 뒤 미래의 모습까지도 투영시켰다. 지금 있는 것들도 먼 훗날에는 다 사라지고 파도와 모래, 그리고 슬픈 그리움만 남을 것이라고. 읽을수록, 알 듯 말 듯 현묘(玄妙)하다. 인천에서 서울로 기차 통학하면서 문학을 익힌 우현의 젊을 적 초기 시 5편이 '우현 고유섭 전집'(열화당·2013)에 실렸는데, 여기 '해변에 살기'는 그중 하나이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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