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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팥빙수, 나가사키 카스텔라로 유명한 '맛집'이자 근대건축물 필수 답사 장소로 알려진 '카페 팟알(pot_R)' 전경.

예전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건물
현재 1층은 카페… 2~3층 다다미방
일본식 점포 겸용주택 '정가' 양식
문화유산 가치 커 '원형복원' 진행
팥빙수 등 메뉴결정도 문헌 토대로
민간 유일 '등록문화재' 성과 불구
상업적성공에 모방건물 난입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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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인천항에 노동인력을 공급했던 하역 업체의 사무실로 쓰인 '인천 구 대화조(大和組) 사무소'(등록문화재 567호)에는 현재 '카페 팟알(pot_R)'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개항장 일대인 인천 중구 관동1가 17에 있는 이 곳은 인천의 등록문화재 가운데 민간이 소유한 유일한 건물이기도 하다.

인천에 많이 남아있던 근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그 존재 가치를 제대로 알리기도 전에 소리 없이 사라져버리거나 운이 좋게 남아있던 일부는 후대의 손에 의해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축물이 본래 지어진 목적을 잃어버리고 본래 태어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면, 두 경우 모두 건축물의 입장에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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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되기 이전에 촬영된 대화조 사무소 전경.

카페 팟알은 인천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 가운데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단순히 목숨을 건지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로 북적이며 사랑받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커피와 팥빙수, 나가사키 카스텔라로 유명한 '맛집'이자 근대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야 하는 필수 답사 장소가 됐다. 성지(聖地)처럼 말이다. 이 건물은 카페 주인인 백영임(53) 씨의 손에 의해 지난 2012년 8월 문을 열었다. 해방 직전까지는 하역 업체인 대화조(大和組)의 사무실 겸 숙소로 쓰였다.

1883년 제물포항이 문을 열고 무역항이 되며 해상 교역량이 늘어나자 짐을 배에서 부두로, 배에서 배로 옮기는 노동력도 필요했다. 대화조는 인부를 해운회사에 공급하는 업체 가운데 하나였다. 이 건축물은 일본 도시 상인들이 사용하던 일반적인 점포 겸용주택의 하나인 정가(町家, 마찌야) 형태의 건물이다.

연중기획 고택기행 팟알 3층 내부4
예전에는 노동자들 숙소인 3층 방에서 창 밖으로 제물포항의 모습이 보였다고 전해진다.

인천 일본 조계지에 현존하는 유일한 정가 양식 건물로서 건축사적인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하역노동자의 노동력 착취의 현장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하고 있다.

3층 높이의 이 건물의 1층은 손님들을 위한 테이블과 주방이, 2~3층은 다다미방이 차지하고 있다. 100여년 전에는 1층은 사무실로 2~3층은 노동자들의 숙소로 쓰였다.

일본인의 관점에서 인천의 변화를 기술한 책 '인천개항 25년사'(1908년 6월 1일 발행)를 보면 이 회사와 회사 대표인 히로이케데시로(廣池亭四郞)에 관한 설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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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숙소로 썼던 2층 다다미방의 모습. 지금은 각종 모임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히로이케데시로, 야마토조장(大和組長) : 히로이케는 메이지 18년(1885)에 인천으로 와서 당시 조운업을 하는 아카마조합(赤間組)에서 근무했다.

메이지25년(1892) 2월 6일 아카마조합을 야모토조합(大和組)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조장이 되었다. …(중략)…현재 하역부 100여명, 단평선(團平船) 10척, 삼판선(三板船) 7척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한 남포(南浦) 출장소를 설립해 취급하는 화물은 오사카상선(大板商船), 요시다조합(慶田組), 세창양행(世昌洋行) 그 외 내외선박 무역상 등의 위임을 받고 있다.

그는 후쿠시마(福島), 아사히(朝日) 두 조직과 서로 연합해 인천 노동사회의 큰 인물이 되었다."

개항 이후 20년 동안의 인천의 변천사를 요약한 책 '인천번창기'(1903)의 부록 관민인명록의 '하역 구미(組)' 항목에도 이 대화조를 비롯한 8곳의 업체가 활동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이러한 업체들의 통제 아래 부두에서 일하며 당시 무역을 장악한 일본인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물포의 일본인은 현대적인 '신사' 들이고, 고기잡이나 노 젓기, 짐 나르기 등은 조선인에게 맡긴다. 조선인들은 짐꾼들이고 일본인들에게 봉사한다"(에르스트 헤세 바르텍의 '조선 1894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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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문화운동조직인 '해반문화사랑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백영임씨가 운영하는 '카페 팟알' 1층 내부.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항만·물류업은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라며 "조선인 노동력의 착취로 비로소 제물포항이 근대 무역항으로서의 기틀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오후 2시 찾아간 팟알은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서인지 팥빙수와 시원한 음료를 찾는 손님으로 북적였다. 주말이면 숙제를 하는 건축학도와 답사 일행들로 붐빈다.

대화조 사무소가 카페로 모습을 바꾸고 사람들과 만나게 된 것은 지난 2012년 8월의 일이다. 인천 지역에 있는 시민문화운동조직인 '해반문화사랑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백영임씨는 지난 2009년께부터 이곳을 눈여겨봤다고 한다.

"문화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개항장 일대의 근대 건축물에 관심이 많아졌고 건축물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죠."

그는 관이 하지 못한다면 민간이라도 먼저 나서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민간이 먼저 나서 문화유산을 지켜가는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면 지자체도 자극받을 것이란 의도도 있었다.

그는 가치 있는 건물을 물색하던 중 이 건물을 발견했다. 무작정 집 주인을 찾아가 수년 동안 집주인을 설득한 끝에 2011년 8월 매입에 성공했다. 물론 건물을 매입하기까지 집주인을 설득하기 위한 지역 예술인과 학계 등 주변의 도움도 많았다.

매입에 성공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930년대 즈음 건물인 줄로 알았던 이 건물이 꽤 오래된 1880년대 말에서 1890년대 초 사이에 지어진 것임이 새롭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저 요즘 쓰임에 맞게 단순히 '리모델링'하려 했던 그의 계획은 제동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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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초기 발행된 엽서에 나타난 대화조 사무소(흰색 점선). 언덕 위에 청국영사관(현 화교학교)과 측으로 일본영사관(현 중구청) 정문의 모습이 보인다.

건축을 전공한 한 대학교수인 지인이 그 건물에 대해 '원형복원'에 가까운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강하게 권유했다. 결국 내부 구조를 살리고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원형복원'을 결심하고 이 일에 매달렸다. 나무 재료 하나, 돌덩이, 문고리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선별해 작업해야 했다. 자연스레 공사 기간은 길어졌다.

건물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용도를 카페로 열기로 하고, 메뉴 선정에도 공을 들였다. 옛 문헌을 뒤져본 결과 팥빙수와 카스텔라가 많이 팔렸다는 기록을 발견하고 지금의 메뉴를 결정했다. 음식뿐 아니라 개항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엽서 등 문화상품도 함께 판매했다.

백씨의 노력 덕에 팟알은 지난 2013년 등록문화재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해외 언론과 여행 매체에 이름도 오르고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지만, 부작용도 나타났다. 팟알의 성공을 모방해 모양만 흉내를 낸 일본식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서며, 주변이 일본 영화 세트장처럼 변해가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는 "남아있는 건물을 복원하는 것과 이미 사라진 것을 굳이 새로 만드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며 "올바른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사진 =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