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대법원은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5명의 청소년에게 모두 무죄를 확정했다. 지난해 11월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에 대한 재심이 결정됐다.
'전북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까지 법원의 결정을 뒤집은 '재심사건' 뒤에는 국내 최고의 재심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박준영(43) 변호사가 있다.
이미 재판이 끝난 사건을 뒤집기 위해선 재판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할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중 형사사건의 재심 결정은 수사 자료를 일일이 수집하고, 당사자를 만나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 수사가 잘못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박 변호사는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한 무죄를 이끌어 내는데 5년 이상이 걸렸다"며 "품이 워낙 많이 들어가다 보니 재심사건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일반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재심사건만을 맡았던 건 아니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으로 유명세를 얻고 난 뒤에도 지난 2014년까지 고용 변호사 2명과 함께 일반 사건 수임도 겸했었다. 그러던 중 탈북브로커가 간첩으로 몰린 이른바 '보위부 직파 간첩사건'을 통해 탈북자들을 접하면서 재심사건에 집중하게 됐다.
그는 "탈북자들은 안정된 삶을 찾아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고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며 "탈북자들을 만나며 안정된 삶에 대한 욕심이 많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재심사건에 몰두하는 동안 수입은 점점 줄었고, 직원들도 하나둘 사무실을 떠났다. 2천만원의 임대 보증금까지 모두 사라져 이달 말 수원시 영통구의 사무실을 비워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재심 변호사의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박 변호사는 지난 11일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사연을 알리고 후원금을 모집했는데, 이후 1억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금됐다. 박 변호사는 사람들에게 형사사건 재심이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는 정의로운 행위로만 비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수감자가 '억울하다' 해서 만나보면 진범인 경우도 있다"며 "형사사건 재심이라는 게 100건 중 단 1건의 억울한 사건을 찾아 내 다루는 것이라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저를 도와주시려는 분들이 그런 점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사법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국가기관을 만드는 것이 박 변호사의 궁극적인 꿈이다. 수사자료를 열람할 수도 없고 당시의 증거를 확인할 권한도 없는 재심 변호사는 결국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박 변호사는 "최근 검사장·법원장 출신의 변호인들이 사법질서를 어지럽히는 것도 결국 수사기관이 기소내용을 축소하거나 생략하면 법원이 이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법 피해자들이 있기에 이들을 위한 국가기관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