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하는 박인비
박인비 귀국 18번 홀에서 들은 애국가 최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골프여제' 박인비가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할아버지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가락 부상속 과감히 테이핑 떼
4R까지 올림픽 중압감에 시달려
만세 세리머니 "애국심 느껴서"
도쿄 올림픽 출전 2연패 의지도

116년만에 부활한 올림픽 여자골프에서 금메달을 일군 '골프 여제' 박인비(28·KB금융그룹)가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박인비는 이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마중 나온 할아버지 박병준(84) 옹에게 금메달을 목에 걸어드린 뒤 팔을 벌려 안아드렸다.

박인비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 우승은 할아버지의 눈물만큼 감동적이었다.

사실 박인비는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했었다. 올 시즌 초반 왼손 엄지 부상 탓에 부진의 늪에 빠졌기 때문.

하지만 박인비는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를 5타 차로 따돌리고 116년 만에 올림픽에서 열린 여자 골프에서 값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금메달로 한국 선수단은 4회 연속 '톱 10'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남편 남기협 씨와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박인비는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경기를 치렀는데, 많은 분이 응원해 주셔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게 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손가락 상태에 대해 "원래 손가락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한 달 동안 훈련만 해 재활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박인비는 밝은 표정으로 답했지만, 왼손 엄지 통증은 꽤 고통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을 앞두고 샷 점검 차 참가한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컷오프를 당했다. 국내 대회에서 박인비가 컷오프된 것은 처음이었다. 문제는 손가락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인비는 실망하지 않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우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다시 마음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무엇이 부족한지 깨달았다. 날카로운 샷이 안 나왔는데, 어떻게 감을 살릴 수 있을까 연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삼다수 대회까지 했던 손가락 테이핑도 뗐다. 박인비는 "테이핑을 한 채 경기를 치르다 보니 감각을 살릴 수 없는 것 같았다"면서 "통증이 느껴지더라도 1주일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올림픽 직전에 테이핑을 과감하게 뗐다"고 말했다. 박인비의 말 대로라면 테이핑을 하게 되면 통증은 덜 느껴진다. 하지만 감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인비가 제 컨디션을 찾을 때까지 남편의 도움도 컸다. 그는 "부상 문제로 스윙에 지장을 받다 보니 남편과 함께 자세 교정을 했다. 우선 스윙(폼)을 약간 틀었다. 바뀐 폼이 퍼트에서도 좀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고 덧붙였다.

박인비는 올림픽에 대한 중압감도 컸다. 그는 "올림픽 1~4라운드까지 부담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메이저 대회 마지막 조로 경기하는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릴 정도로 힘들었다"고 강조했다.

이례적인 세리머니에 대해 "그동안 고생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부담감을 견뎌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나, 박인비를 위해 한 경기는 많았지만, 이번엔 조국을 위해 경기했다는 것에 애국심과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향후 일정에 대해 "에비앙 챔피언십에 나가고는 싶지만,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손가락) 경과를 보고 복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한 출전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4년 뒤 가봐야 알겠지만, 그때까지 선수 생활을 한다면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