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7년 창고업자 등장
붉은 벽 삼각지붕 형태
규모 차이 있지만 비슷
아트플랫폼 공연장에
한국근대문학관 이어
아카이브 카페 빙고도
얼음창고서 '환골탈태'

이 일대는 세계 열강이 통상의 목적을 가지고 자유롭게 거주하면서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특정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결정된 지역으로서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된 곳이며, 아직까지 독특한 건물 양식들과 도시계획의 흔적들이 잔존해 있는 장소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이러한 인천의 근현대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지역에 세워졌다.
-'인천문화재단 5주년 백서' 중에서
1883년 인천항의 개항 이후 개항장(해안동) 주변에는 당대 들어선 근대 건축물들이 잘 보존돼 있다. 붉은 벽돌에 삼각형 지붕을 한 창고 건물도 이 일대에서 볼 수 있는 근대 건축물이다.
인천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창고는 1884년 마쓰비시 기선회사의 창고이다. 1890년 인천미두취인소가 창고를 만든 뒤 많은 창고들이 지어졌다.
하지만 당시 건설된 창고는 각 업체의 화물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창고를 임대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인천에 창고업자가 출현한 것은 1907년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인천출장소가 설치되면서부터다.
1919년에는 일본인이 주축이 된 인천창고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이듬해 인천창고주식회사는 조선실업은행 인천지점을 매수했으며, 1924년 조선실업은행 인천지점이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으로 통합되면서 지역 창고업은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이 독점했다.
1930년부터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회사가 대주주가 돼 창립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가 창고업을 독점했다. 1943년 운송면허를 얻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는 1961년 한국운송주식회사를 흡수했으며, 이듬해 대한통운주식회사 인천지점으로 탈바꿈했다.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인천지점은 21개 동(7천484.3㎡·2천264평)의 창고를 소유했다. 그 밖에도 당시 은행과 해운업자, 개인 소유의 창고가 56개 동(2만5천401.8㎡·7천684평)에 달했다고 한다.
인천에 지어진 창고들은 규모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구조는 대부분 비슷하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의 C동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물은 대한통운 창고를 리모델링 한 것이다. 건물의 기본 구조와 내부공간을 원형대로 유지하되, 복원보다 보수에 비중을 둔 리모델링을 거쳐 2009년 인천아트플랫폼의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 건물의 건축연대에 대한 건축대장의 기록은 1948년이지만, 지역 학계에선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유추한다.
근대건축전문가인 손장원 인천 재능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인천 근대 건축'에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매립 이후 부두 창고로 사용하기 위해 이 건물을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손 교수는 "이 일대는 1899년 5월 말에 매립됐고, 매립지 1만3천223.3㎡(4천평) 중 절반에 해당하는 6천611.6㎡(2천평)를 창고와 시장 부지로 사용했다는 기록에서 이 건물도 이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건물은 적벽돌로 벽체를 구성하고 지붕은 트러스를 올렸다. 현재 대한통운 창고를 리모델링한 C동 공연장을 비롯해 인천아트플랫폼은 13개 동의 건물로 이뤄졌으며, 공연과 전시, 공방, 예술인 레지던시 등의 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C동 공연장과 함께 새롭게 만들어진 건물들도 예전 건물과 같은 붉은 벽돌 재료를 사용하고 옛 건물의 형태를 적용해 일관되게 꾸민 인천아트플랫폼의 거리는 2009년 완공되었는데도 오래전부터 있었던 동네인 것처럼 고즈넉한 정취가 가득하다.

인천 중구청으로 가는 왕복 2차선 도로를 두고 인천아트플랫폼과 마주하고 있는 한국근대문학관도 옛 창고 4개 동을 리모델링해서 2013년 탄생했다. 4개 동 중 기획전시실로 쓰이는 건물은 1892년에 지어졌다. 그 옆 상설전시실 건물 두 동도 1930~1940년대에 건립됐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창고는 연대 미상이다. 이들 창고 건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쌀 창고, 김치 공장 등으로 쓰임새가 다양하게 변했으며, 현재 우리 근대 문학의 보고로 현대인들과 조우하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과 한국근대문학관을 설계한 황순우 (주)건축사무소 바인 대표는 "100년이 넘은 건물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닌 과거 일상의 삶을 담으면서 또 다른 100년을 목표로 재생시키고 싶었다"면서 "서양과 동양, 중앙과 지방이라는 갈등 구조 속에서 이뤄진 근대화(시간과 관계 속에서 충돌한 예술)와 함께 동시대 예술을 다룰 수 있는 공간 등 다의적 공간으로 두 공간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인천 중구 신포동의 아카이브 카페 '빙고(氷庫)' 또한 1950년대 얼음 창고가 환골탈태한 경우이다. 얼음 창고의 1층은 아카이브 카페, 2층은 건축재생공방이 자리잡고 있다.
건축재생공방 이의중 대표와 함께 그의 부인 이규희씨는 카페 사장을 맡고 있다. '빙고'를 함께 운영하는 부부가 거주하는 집은 '인천 고택기행' 5편에서 소개된 중구 경동 127 한옥(경인일보 2월4일자 9면 보도)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오래된 것들은 향수를 자극한다. 첨단 건축의 세련된 문화 공간 보다 옛 창고를 개조한 공간은 그래서 더욱 살갑다.
글 =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사진 =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