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또다른 이민 해외 입양 특별전시회 서재송 회장8
1960년대부터 덕적도, 동구 송현동, 부평구 부평동 등에서 50년 넘게 고아들을 돌보며 해외 입양에 헌신해온 서재송(87)씨가 25일 오후 인천 월미도 한국 이민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또 다른 이민, 해외 입양' 특별전을 찾아 해외 입양 역사를 담은 각종 사진과 입양 허가서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전쟁고아·미군 혼혈자녀 상당수
한국인 20만명 추산 '전세계 40%'

보육원 운영 1600여명 타향 보내
"언젠가 모국서 뿌리 찾기" 보존
실제 친부모 찾아준 사연도 기록

그동안 부끄러운 과거로 치부돼 역사의 그늘에 가렸던 해외 입양을 이제는 '한민족의 이민사'에 포함해 보듬어야 한다는 취지의 전시회가 인천에서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인천 월미도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올 11월27일까지 '또다른 이민, 해외입양'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전쟁 이후 본격화한 한국 해외입양의 역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명했다. 한국인 해외 입양인 수는 현재까지 2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 입양인 50만여 명 가운데 40%가량이 한국인이다. 우리나라 해외 입양은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10만여 명의 전쟁고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다.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과 한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 상당수도 해외로 입양됐다.

인천에도 보육시설이 많았다. 해방 이후부터 대규모 주한미군기지인 '애스컴'(ASCOM·현재 캠프마켓으로 축소)이 주둔하면서 혼혈아동 문제가 심각했다. 1894년 인천에 설립된 해성보육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보육시설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해외 입양 역사를 담은 각종 사진과 입양 허가서, 친권 포기서, 친부모를 찾으려는 해외 입양인의 편지 등 자료 400여 점이 전시됐다. 전시회를 개최하는 데에는 한국 해외 입양 역사의 산증인인 서재송(87)씨의 공이 컸다.

서재송씨는 1960년대부터 덕적도, 동구 송현동, 부평구 부평동 등에서 50년 넘게 고아들을 돌보며 해외 입양에 헌신해왔다. 그가 운영을 맡았던 보육원을 거친 해외 입양인만 1천600여 명이다.

그동안 서재송씨가 모아온 해외 입양 관련 자료 115건도 전시회에서 공개됐다. 15년 전 입양을 보낸 3남매의 소식을 묻는 친엄마의 편지 등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든 자료들이다. 서재송씨는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떠나야 했던 아이들이 언젠가는 모국을 찾아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있도록 거의 모든 자료를 남겼다"고 했다.

서재송씨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해외 입양인의 친부모를 찾아주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도 미국에 거주하는 혼혈 입양인의 친부모를 찾아 경기도 포천까지 다녀왔다. 노인회관 등을 수소문해 입양인의 친척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해외 입양인의 친부모를 찾아준 여러 사연도 이번 전시회에서 접할 수 있다. 내년 초에는 서재송씨가 돌봤던 해외 입양인들이 덕적도 자택을 방문할 예정이다.

서씨는 "보육원에 머물렀던 아이들이 입양을 간 후 오랫동안 떨어져 있지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성인이 된 아이들이 나를 보러 인천을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재송씨는 "해외 입양으로 한국이 한때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보듬어야 할 역사"라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해외 입양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신은미 한국이민사박물관장은 "해외 입양인의 많은 수가 인천의 보육시설을 거친 것은 부평 애스컴시티 주변 기지촌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 때문"이라며 "해외 입양 역사도 한국 이민사의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