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3년 신축 일제수탈 역사 간직
2015년 철거 전 수원시가 사들여
최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신청
근대건축 양식 외관 그대로 보존
우리 주변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로 등록·지정되지 못해 훼손 혹은 멸실될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개발 논리와 소유권 문제 그리고 문화유산의 보존 가치가 충돌하면 우리는 보통 아쉬운 결말을 봐왔다.
이런 면에서 수원시 교동의 부국원(富國園)은 멸실 및 훼손의 위기를 잘 넘기고, 더 나아가 활용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주목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수원은 종묘 회사가 많이 모여 있던 농정 중심 도시였다. 그리고 부국원은 수원을 대표하는 종묘 회사였다. 본래 수원 지역의 종묘와 종자는 권업모범장에서 직접 배부되었으나 1910년대 후반을 넘자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수원 읍내의 부국원을 통해 종묘와 종자가 공급되기 시작한다.
1920년대 순이익이 매년 1만원이 넘는 회사로 발전하였으며, 1923년 9월 현재의 모습으로 건물이 신축된다. 1930년대에는 자본금 30만원(현재 화폐가치 약 60억원), 불입금 15만원으로 일본인 대주주가 참여해 운영하였으며, 해방 전까지 호황을 누렸다. 해방 후 종묘회사는 건물을 옮겨 맥을 이었지만, 원래 건물은 수원법원, 검찰청사, 수원시교육청, 공화당 경기도당 당사로 사용되었다.
말하자면 부국원은 일제 수탈 역사와 함께 숨 가쁘게 진행된 현대사의 기억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부국원은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2006년 12월 수원시 향토문화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개인 소유인 이 건물은 돌연 2015년 4월 철거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2014년 소유주가 바뀌면서 옛 부국원과 옆 건물을 헐어 원룸 등 생활형 숙박시설을 지을 계획을 수원시에 요청했던 것이다.
다행히 같은 해 7월 수원시와 건물주의 매매 합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9억원에 소유권이 수원시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2016년 4월에 수원시는 부국원을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로 신청하였다.
부국원은 지상 2층, 건축 연면적 85㎡ 규모로 1923년 신축 당시의 외관을 현재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 등록문화재가 되면 근대 건축 양식을 잘 드러내고 있는 외관이 반영구적으로 보존될 것이다.
더불어 등록문화재가 되더라도 일정 부분의 내부 공사가 허용되니 용도에 따라 인테리어를 시도하여 '근현대사박물관'이나 '시정홍보관' 등으로 변용할 수 있다. 또
한 구 수원문화원(등록문화재 제597호), 구 수원시청사(등록문화재 제598호), 수원역 급수탑, 선경직물, 서울농대 부지 등과 연계한 '수원 지역 근대거리 조성'을 통해 선적(線的) 활용 가능성도 충만하다. 수원시가 이번 훼손의 위기에서 부국원을 지켜냄으로써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연계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간난(艱難)한 역사를 경험했던 우리의 근현대 시기에는 이렇듯 '부적(負的) 문화유산, Negative Cultural heritage'의 보존여부가 당면 과제로 등장했던 예가 적지 않았다. 서울 중앙청의 경우도 그러했지만, 이제는 우리 국민이나 국가의 포용력을 더 넓혀 나가도 좋은 여유로운 시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교육과 반면교사의 소재로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