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하러 가는 겁니다. 길이 그쪽으로 나 있으니 지나가는 거지 법주사는 들리지도 않을 건데 문화재 관람료를 내라는 게 말이 됩니까"

청주시 가경동에 사는 이모(41)씨는 최근 가족과 함께 속리산 국립공원을 찾았다가 매표소 직원과 한바탕 승강이를 했다.

문화재가 있는 법주사는 둘러볼 계획이 없고, 등산만 즐기려는데 1인당 4천원의 문화재 관람료를 무조건 내라는 직원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절에는 가지 않는다"는 그의 항변에도 직원은 관람료를 내지 않으면 속리산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만 되뇌었다.

결국 이씨는 관람료를 내고서야 속리산에 들어섰지만 산행을 하는 내내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국립공원 내 사찰들이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징수하는 '통행세'를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전국 곳곳에서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상식을 벗어난 '문화재 관람료' 징수가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한다며 정부와 불교 종단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관람료 징수 탓에 등산객들이 외면, 발길을 끊는 바람에 상권이 위축되면서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주변 상인들의 불만도 크다.

당장 관람료 폐지가 어렵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전국 국립공원 내 사찰 27곳 중 25곳 관람료 징수

국립공원 내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 논쟁이 처음 불거진 건 9년 전인 2007년부터다.

이전까지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를 통합 징수해오던 정부가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자 공원 내 사찰들이 자체적으로 문화재 관람료 징수에 나선 것이다.

28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전국 16개 국립공원 내에는 27개 사찰이 있는데 이중 설악산 백담사와 덕유산 백련사를 제외한 25곳이 현재까지 1천∼5천원의 관람료를 받고 있다.

백담사는 방문객 대부분이 설악산 봉정암 참배객이나 등산객이어서 사찰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하더라도 문화재 관람료 수입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징수를 포기했다.

백련사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측과 매표소 이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관람료 징수를 폐지했다.

덕유산국립공원 내 안국사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가을 단풍철 한 달간만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

이들 사찰을 제외하고 관람료를 받는 국립공원 내 사찰들은 연간 수입액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찰들이 연간 관람료 수입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1인당 4천원의 관람료를 받는 속리산 법주사의 경우 연간 입장객 수를 고려해 한 해 15억원 정도의 수입을 거두는 것으로 추정된다.

◇ 문화재 관람 여부 상관없이 '통행세'처럼 일괄 징수…등산객들 불만

사찰들은 방대한 문화재를 유지·관리하고 주변 탐방로 정비, 문화재 보존 등을 위해서는 관람료 징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재 관람료가 일종의 '통행세'처럼 징수되는 경우가 많아 상당한 갈등을 빚는다.

가을 단풍철 한 달간만 문화재 관람료(성인 2천원)를 받는 덕유산 안국사는 매표소를 사찰 입구가 아닌 산 중턱 천일폭포 앞 도로에 설치했다.

이 때문에 안국사를 들르지 않는 등산객들도 무조건 관람료를 내야 한다. 특히 탐방객이 많은 시기에만 관람료를 받기 때문에 불만이 상당하다.

그러나 안국사 측은 "천일폭포 일대도 사찰 소유지라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리산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을 오르는 탐방객들도 무조건 천은사 측에 자연공원법에 근거한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성인 1천600원)를 지불해야 한다.

이에 반발한 강모씨 등 74명은 2010년 12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천은사와 전남도를 상대로 통행방해 금지 등 청구 소송을 제기, 대법원 상고심까지 가는 법정 공방 끝에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법원 "도로 부지 일부가 천은사 소유라 해도 지방도로는 일반인의 교통을 위해 제공된다"며 "강씨 등 원고 각자에게 입장료를 돌려주고, 위자료 1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지난해에도 박모씨 등 105명이 동일한 소송을 제기, 같은 재판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천은사 측은 "정부가 우회도로가 있음에도 관광 목적으로 천은사 소유 토지를 무단 점유해 도로를 만들었고, 입장료는 도로 통행료가 아니라 문화유산 보호와 관련된 비용"이라며 입장료 징수를 고수하고 있다.

◇ 지자체-사찰, 폐지 협상…'보전액' 입장 차로 '헛바퀴'

등산객들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문화재 관람료 폐지를 원한다. 관람료 때문에 등산객들이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지역 상권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찰들이 반대,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국립공원은 아니지만 부산 금정구 금정산의 범어사는 2008년 진통 끝에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했다. 부산시가 문화재보호관리지원사업에 따른 지자체 경상보조금 명목으로 범어사에 매년 3억원을 보전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충북도도 수년 전부터 일정액의 손실금을 보전해 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관람료를 폐지하자고 법주사를 설득 중이다.

하지만 손실 보전액 책정을 놓고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만 되풀이하고 있다.

충북도는 지난해에도 법주사에 연간 관람료 절반을 보전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거절당했다. 올해는 이보다 보전액을 올려 협상에 나섰지만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사실 충북도는 법주사의 비공개로 정확한 연간 관람료 수입이 얼마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다만 연간 입장객 수를 고려해 15억원 정도로 추정만 하고 있다.

충북도는 보전 금액을 보은군과 공동 부담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전액을 보전해주는 건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법주사로서는 관람료보다 적은 보전액이 반가울 리 없으니 협상은 쳇바퀴 돌 듯 하고 있다.

◇ 속 타는 주변 상인들…"국민 공감대 살 수 있는 대책 필요"

국립공원 주변 상인들은 관람료 징수 때문에 상권이 위축돼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며 폐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속리산의 경우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해 220만 명이 찾는 중부권 최대 관광지였다.

그러나 오랜 침체기를 거치면서 지금은 한해 관광객이 70만명선으로 줄었다. 찾는 사람이 줄면서 음식점과 숙박업소 200여 곳 가운데 10여 곳은 이미 문을 닫았고, 나머지 업소도 매출이 줄어 울상이다.

우창재 속리산관광협의회 회장은 "최근 단체 관광객들이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는 경북 상주의 화북지역을 통해 속리산을 찾는 추세"라며 "관광 활성화의 걸림돌인 문화재 관람료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문화재 관람료 갈등이 더 큰 사회문제로 비화하기 전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황평우 전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사찰의 문화재 관리에 국민의 혈세인 국고 보조금으로 이미 지원되는데 또다시 관람료를 징수하는건 부당한 이중 지원"이라며 "거둬들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공개조차 되지 않으니 쌈짓돈으로 의심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득이하게 문화재 관람료를 거둬야 한다면 투명하게 사용처를 공개하고,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한다"며 "또한 요금 징수 장소도 국민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사찰들이 9년째 국립공원에 입산하는 모든 등산객들을 상대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한다는 기사가 나가자 불과 8시간만에 3천여건의 댓글이 달리는 등 누리꾼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누리꾼들은 대체로 '통행세'와 다를 바 없는 현재의 징수 방식에 불만을 쏟아냈다.

누리꾼들은 "국립공원 등산객들에게 무조건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건 횡포"라며 "사찰이 관리하는 문화재들을 관람하는 비용을 받는 것이라면 절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재원 확보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지금과 같은 국민적 호응을 얻지 못하는 징수 방식은 조속히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