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권위가 '쩨쩨한 시선의 권력' 소진
복고적이고 퇴행적 판타지 비판의 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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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영화평론가
'에로 영화'라는 말은 애매하다. 개념도 불명확하고 기준이나 범위도 모호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에로영화를 판별해낼 수 있다. 직관적인 제목 덕분이다. 에로영화에 대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오랜 논쟁에도 불구하고 한 번 흥행에 성공한 에로영화는 시리즈로 제작된다.

1980년대의 <애마부인> 시리즈가 그랬고, 1990년대의 <젖소부인 바람났네> 시리즈가 그렇다. 이런 영화들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당대의 사회적 균열과 파열을 포착해 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개 남성의 시선을 전제로 여성의 신체를 전시한다는 한계로 인해 이중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얼마 전 <젊은 엄마: 디 오리지널>이 개봉됐다. '젊은 엄마'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극장에서의 흥행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IPTV나 주문형 케이블 비디오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에로 영화들의 제작이 급증하고 잇다. 1990년대 VHS 비디오가 일반화되면서 에로비디오가 유행했던 것을 기억하면 신기한 일도 아니다. '에로'에 대한 찬반이나 호불호를 떠나서 내러티브와 미장센, 음향 등 영화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저급한 영상물들이 상술에 의해 초저예산으로 제작됐다.

그러니 미디어 환경이 변화된 지금 에로 영화를 비롯한 성인 콘텐츠의 제작이 늘어난 것을 이상히 볼 일은 아니다. 어쨌거나 소비자가 있으면 생산되기 마련이니까.

<젊은 엄마1>의 경우 육아의 힘겨움과 단조로움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가출한 후 부유하면서도 육아에 적극적인 장모와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는 설정은 비윤리적이지만 한국 남성들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부장적 질서를 가능케 했던 경제적 우월성은 상실되었고, 남성의 권위란 이제 에로 영화를 통해 여성의 신체를 감상하는 쩨쩨한 시선의 권력 외에는 남아 있지 않다. 자신을 남성으로 인정해주면서도 육아와 생계를 동시에 책임져 줄 구원자가 필요하다.

복고적이고 퇴행적인 이 남성 판타지에 대한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나 단순히 베드신의 나열과 여성 신체의 진열만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제작자들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영화가 아무런 현실도 반영하지 못한다면 봐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dupss@nate.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