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눈앞에서 자살한 친구의 발가락은 가벼웠다. 그가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인두로 얼굴을 지진 여성의 시신은 너무 작았다. 그 실존의 자리에서 그는 어디에 이름을 올릴지 결정해야 한다.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기묘하다.
질문은 '암살'을 이어받는 듯하고 설정은 '신세계' 같은 언더커버 잠입물과 유사하다. 그런가 하면 이미지나 음악은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 갱스터 느와르를 떠올리게 한다.
'독립이 될 줄 몰랐기 때문에 변절했다'는 '암살' 속 염석진의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동시에 질문이기도 하다. 그 가느다란 희망 앞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밀정'의 이정출(송강호)이란 인물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영화의 도입부 이정출 역시 묻는다. "너는 조선이 독립할 것 같냐?"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 그는 동일한 질문을 하는 친일 부호에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의 내부에서 희망과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이미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딛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도덕군자 같은 말 때문이 아니다. 갑자기 신념을 갖게 되어서도 아니다.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안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김장옥(박휘순)과 연계순(한지민)의 몸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경성으로의 무기 반입이 실패한 후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대규모 체포작전에서 흐르는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곡은 영화를 낯설게 하면서 '대부' 같은 갱스터 느와르를 연상시킨다.
이전까지 '신세계'나 '무간도'처럼 두 진영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이제는 두 진영 중 어디에 설 것인지 묻는다.
그러므로 질문은 바뀐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죽을 것인가'로. 질문이 바뀌는 순간 실존의 자리도 바뀐다. 시대가 변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두 질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생존의 윤리인지, 삶의 윤리인지.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