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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며 취업 창업에 성공한 4명의 새내기 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은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왼쪽부터) 경기도청 김동주 사무관, LH 주택사업본부 최승연 감독, 모아이 유서연 대표, NH농협은행 모란지점 강희두 계장.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대체 왜 일을 이런 식으로 해야하나"
하루에도 몇번씩 답답한 순간 생겨
꽉 막힌 취업·창업 문 뚫었지만…
연애·결혼·육아 다시 난관 부딪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 흔히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갖는 것부터 반려자와 아이가 있는 풍경을 완성하기까지 이 시대 청년들은 수십, 수백 번을 넘어지고 좌절한다. 어디에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을 명함을 갖고 있는 네 명의 청년들도 여느 청년들과 다르지 않았다.

수백 번 넘어진 끝에 지금 자리에 앉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3포· 5포를 넘어 'n포 세대'로까지 불리는 청년세대는 연애와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그리고 꿈과 소망까지 사치라고 말한다. '젊음만 있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 역시 '포기하는 세대'가 돼버린 이들에겐 그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로만 들릴 뿐이다.

청년들에게 2016년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고국이라기보다 하루빨리 탈출해야 할 지옥의 땅(헬조선)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멈춰서야만 할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자 네 명의 청년들은 입을 모아 '공감'을 말했다. 진심을 다해 상대에게 다가서는 것에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을 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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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다니던 직장 그만 두고, 수십 번 떨어진 입사시험

NH농협은행 모란지점 대부계에서 일하는 강희두(28) 계장은 50전 51기 끝에 취업에 성공했다. 수학을 좋아했고 은행에서 일했던 어머니를 좇아, 큰 망설임 없이 금융권의 문을 두드렸다. 금융 관련 자격증 3종 세트는 물론 AFPK(한국재무설계사)와 컴퓨터 관련 자격증까지 빠짐없이 취득했다. 남들 못지 않게 노력했지만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2년 동안 쓴 입사지원서만 50장. 최종 면접까지 간 경우는 겨우 세 번 뿐이었다. 떨어져도 실망할 겨를조차 없이 다른 회사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나날이 쳇바퀴처럼 이어졌다.

경기도 자치행정과 김동주(29) 사무관은 5년 전 경찰대를 졸업했다. 자연스레 경찰공무원이 됐지만, 수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수사팀장은 몇 개월 만에 다른 길을 고민하게 됐다. 일반 행정 공무원으로 눈을 돌렸고, 범죄 수사를 하다가 남몰래 고시 공부에 매진하는 날들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시험에 낙방해 마음이 쓰린 가운데에서도 '민중의 지팡이'로 일해야 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택사업본부에서 건설 공사를 맡고 있는 최승연(33) 감독은 LH가 세 번째 직장이다. 4년 전 다녔던 그의 첫 직장은 건축 관련 구조를 설계하는 민간기업이었다. 빨리 퇴근하면 밤 11시, 야근을 밥 먹듯 했다.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5일 동안 야근을 했지만, 수당은 이틀 치만 지급됐다. 두 번째 직장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을 버텼다. 그는 '저녁이 있는 삶'을 원했고 공기업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3D프린터를 이용해 피규어를 제작하는 업체 '모아이'의 유서연(32) 대표 역시 작은 회사에서 홍보 업무도 맡고 디자인 쪽 일도 하는 월급쟁이 직장인으로 5년을 살았다. 2년 전 아이가 태어나면서 삶이 바뀌었다. 3개월의 출산 휴가 후 다시 찾은 회사는 아이 엄마가 된 그를 더이상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손에서 일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창업을 결심한 이유다. 결혼식을 치를 때 쓰지 않고 모아뒀던 돈에 대출금을 더해 '시드 머니' 1억 원을 겨우겨우 마련했다.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썼고 한 달 만에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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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우리 회사는 왜 그러는 걸까요?


어렵사리 지금의 자리에 앉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이들 1·2년 차 새내기들은 "대체 왜 일을 이런 식으로 해야 하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등 조직에서 답답하고 당혹스러운 순간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맞닥뜨리고 있다. 민간기업 두 곳을 거쳐 공기업에 오게 된 최 감독에게 민간기업과 공기업 간의 차이점을 묻자 "조직 분위기로만 봤을 때 아무래도 공기업쪽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것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공조직의 업무 특성상 민간에 비해 창의성이 좀 부족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입사 면접에서 구직자에게 창의성이나 열정, 이런 걸 으레 묻는다. 그렇게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인재'를 앞세워 많은 이들이 입사했을 텐데 그때 요구됐던 것들이 이곳에선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공기업의 장점으로 "다음 날에 지장을 줄 만큼 야근을 무리하게 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경찰에서 행정 공무원으로 옷을 갈아입은 김 사무관은 어떨까. 그는 "전 직장에선 직급이 높든 낮든 '서장님 생각이 곧 내 생각'이라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같은 공무원이라도 이곳에선 직급에 따른 권위 의식 같은 것은 좀 덜하다"면서도 소위 '행정고시 출신'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 대해선 "되게 민감한 문제인데, 좀 많이 힘든 부분이긴 하다"고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해 떠 있을 때는 괜찮은데 해가 지고 술 한잔이 돌면 고시 출신에게만 승진 기회가 몰린다는 불만 등이 늘 화두가 된다. 대응할 방법은 못 찾았다. (그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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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3일 경인일보 새내기 진심토크 에 참여한 4명의 창업 새내기 직장인들이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대부계(돈을 빌려주는 부서)에서 첫 직장 생활 중인 강 계장은 "회사 사람들보다는 고객들과의 트러블이 더 문제"라고 토로했다.


"대낮부터 얼큰하게 취해서 오는 분들도 많고, 설명을 충분히 했는데도 '내가 뭐가 문제냐'며 소리부터 지르는 사람도 있다. 제일 진상(?) 고객은 들어오자마자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구야'라는 분들이다. 직장 선배한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다. 내 앞 고객이 문제지만, 선배 앞에도 고객이 있으니 내 고객에 대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처리해야 한다. 그게 참 어렵다."

'창업 새내기' 유 대표는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 얘기를 꺼냈다.

"남편은 퇴근했는데도 새벽 3시에 회사 전화를 받고 다시 나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자신의 일이 끝나도 퇴근을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했는데 같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들어가기 어려운 회사인만큼 남편도 처음엔 패기 넘치게 일했다. 하지만 10년을 일하다 보니 이제 '하기 싫다'고 말하더라. 그러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신청했고, 나는 어렵게 창업을 결심한 것이다. 몸은 힘들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낫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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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 힘들지만 중년도 편하지 않아
혼자 밥 먹고 술자리선 직원 눈치 봐
감사·죄송 등 진심 전하는 일 서툴러
마음 하나, 말 한마디부터 바꿔가야

 

■ '평범'조차 청년들에겐 사치

여느 또래들에겐 선망의 대상일 네 명의 청년들에게도 주거와 결혼, 육아는 큰 부담이다. 실제로 지난해 신혼부부 한 쌍의 평균 결혼 비용은 2억3천800만원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한 비용이었다. 이런 현실 속 '집을 만드는' 곳에 다니는 최 감독에게도 정작 '내 집 마련'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기 돈으로 집을 살 수 없는 구조"라며 "아직 연애도 하지 않고 있는데 여러 주택 정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벌써 대출만 5천만원이 넘어갔다"는 김 사무관도 "결혼을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는데 수원만 해도 가장 작은 평수가 2억~3억원"이라고 걱정했다.

연애 역시 정작 청춘들은 시간적, 금전적, 심적 여유가 없어 못 한다고 강 계장은 말한다.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면 공부를 해야 한다. 동기들 모두 토요일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상당히 압박이 심하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연애는 물론 결혼도 어렵게 느껴진다."

네 사람 중 유일한 기혼자인 유 대표는 육아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아이를 낳은 후 직장을 그만뒀던 유 대표는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은 출산, 육아를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다. 남성의 육아 휴직을 권장하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부분이 남아있다"며 "우리나라도 고등학교 때부터 육아에 대한 학습을 시키면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기혼여성 10명 가운데 2명 꼴로 경력단절 여성이고, 이 중 10년 이상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비율은 38%를 차지한다. 김 사무관도 "공직을 희망하는 가장 큰 동기가 육아휴직 후에도 책상이 사라지지 않는 '안정감'이다. 그런데 이는 공무원 사회만이 아닌모든 사회에서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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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공감'

꽉 막힌 취업·창업의 문을 뚫었으나 현실은 여전히 답답했고, 행복한 삶은 아직 멀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해 묻자 이들 모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네 명의 청년들이 내놓은 답은 결국 '공감'이었다.

청년세대도 막막하고 힘들지만, 기성세대도 벼랑 끝에 서 있긴 마찬가지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고통을 '나약하고 참을성이 없다'고만 치부해버리거나, 청년들이 기성세대를 짜증나고 답답한 존재로만 여기고 침묵해버리는 것만으로는 무엇도 해결될 수 없다. 마음을 열고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에서부터 변화의 첫 걸음이 시작된다는 얘기였다.

최 감독은 "금수저, 은수저 얘기마저 나오는 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면 현재의 교육이 단순한 지식 학습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운을 뗐다. 그는 "영어나 수학에만 매진할 게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부터 교육을 통해 길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관은 "현재 사회는 극심한 경쟁 사회인데, 문제는 경쟁에서 낙오됐을 때 그 피해가 크다고 느끼면 화살을 남에게 돌리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청년들도 힘들지만 사실 중년들도 편하기만 한 건 아닐 것"이라며 "직원들과 소통을 좀 하려고 하니까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추진되고, 평일에 서운했던 점을 풀기 위해 등산을 가자고 하니 모두 싫은 기색이다. 밥도 혼자 먹어야 하고, 술자리에서도 언제 일어나야 할 지 젊은 직원들 눈치 보기에 바쁘다. '개저씨'니 뭐니 하지만 사실 부장님도 힘들지 않겠나"라고 했다.

세살배기의 엄마 유 대표는 "남자 육아 휴직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조성되면 좋겠다. 남성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가 되면 많은 부분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웃었다.

강 계장은 '진심'을 전하는 일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표현이 부족한 것 같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일에 서투르다. 저부터도 당장 마음을 열고 '감사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게 어려웠었다"며 "은행원이 돼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일상 속에서 생각보다 감사할 일과 사과할 일이 많은데,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다 표현하지 못하곤 한다. 마음 하나, 말 한 마디가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강기정·전시언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