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중기획 고택 강화 교동 대룡시장35
국내 대표적인 실향민 장터인 교동도 대룡시장에서 수십 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 중 대룡잡화점

일본식 건물 중심으로 1층 점포 신·증축 통해 규모 키워
이발소·약국·양복점 등 60년 세월 상인과 함께 나이들어
시장 호황기 들어선 '방석집' 자리는 대부분 빈채로 방치

고향 돌아갈 날 기다리던 1세대 하나 둘 세상 떠 활력잃어
신발가게·문구점 이어 마지막 시계방도 빈 점포로 남아
역사·문화적 가치 보존위해 시장 활성화 대책 마련해야


-인천 연중기획 고택 강화 교동 대룡시장27
도심 속 전통시장 대부분은'시설 현대화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아치형 비 가림막을 씌우고, 각 점포를 복제품처럼 리모델링해 개성을 잃은 지 오래다.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 있는 대룡시장은 태어날 적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시장 건물들은 딱히 새 단장을 하지 않은 채로 60년 넘게 가게를 지켜온 상인들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대룡시장은 국내 대표적인 실향민 장터다. 한국전쟁 때 교동도에는 황해도 연안지역에서 3만여 명의 피란민이 내려왔다고 한다.

피란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동도에 머물며 전쟁이 끝나길 기다렸으나, 남북 분단의 현실이 그들을 '실향민'으로 만들었다. 실향민 상당수는 교동도를 떠났지만, 고향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은 섬에 남아 삶의 터전을 일궜다.

교동도에서 농사 지을 땅이 없는 실향민들은 생계수단으로 장사를 택했다. 그렇게 시작된 장마당이 지금의 대룡시장으로 커갔다.

40곳 남짓한 점포가 들어선 시장 건물들 대부분도 한국전쟁 이후 지어졌다. 시장이 형성되기 이전에도 교동도에서는 꽤 큰집에 속하는 2층짜리 일본식 주택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룡시장 한가운데인 시장사거리를 중심으로 2층 다다미방이 딸린 일본식 건축물 3채가 점포로 쓰이고 있다.

대룡시장은 일본식 건축물 양옆으로 1층짜리 점포를 다닥다닥 증축·신축해가며 규모를 키웠다. 시장사거리 안쪽으로도 1층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곳곳에 시장골목을 만들었다. 해방 이후 교동면사무소가 읍내리에서 대룡시장이 있는 대룡리로 옮겨지면서 시장 일대가 섬의 중심지가 됐다.

현재 면사무소는 교동초등학교 근처에 신축해 이전했는데, 시장 안에는 옛 면사무소 건물이 남아있다. 옛 면사무소 건물 옥상 철탑에 달린 낡은 대민방송용 확성기들이 눈에 띈다. 실향민들이 대룡리에 많이 모여 살게 된 까닭도 한국전쟁 때 피란민 연락소가 대룡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교동도에는 장터가 없었다. 교동도 주민들의 생활권은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이어서 큰 장터가 있는 연안읍으로 장을 보러 갔다. 교동도에서 연백군은 배를 타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고, 썰물 때는 헤엄쳐서 갈 수 있을 정도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다.

섬마을의 낡아빠진 건축물들이 모인 공간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대룡시장은 건물마다 자리 잡은 오래된 가게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진정한 가치를 발산하고 있다. 이발소, 정육점, 잡화점, 시계방, 약국, 양복점, 신발가게, 철물점, 다방 등 저마다 수십 년의 연륜을 물씬 풍기는 가게들의 낡음에서 정겨움이 묻어났다.

1·4후퇴 때 연백군에서 피란 나온 80대 할머니가 지키고 있는 대룡잡화점 마루 밑에는 작은 아궁이가 있어 추운 겨울도 날 수 있다. 교동도 토박이인 나의환(85) 할아버지가 5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동산약방에서는 가게와 나이가 같은 유리창 달린 하얀색 약장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나의환 할아버지는 "과거 시장이 클 때는 약국이 다섯 군데나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약방만 남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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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적인 실향민 장터인 교동도 대룡시장에서 수십 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 중 왼쪽부터 동산약방, 옛 교동상회, 교동이발관

대룡시장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농촌 근대화사업이 활발하던 1970년대에 호황을 누렸다. 교동도 곳곳에서 저수지와 방조제 공사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섬에 건설인력이 대거 몰렸다고 한다. 현재 3천명이 조금 안 되는 교동도 인구가 1975년에는 1만1천200여 명에 달했다.

대룡시장 골목골목에는 여성 접대부를 거느리는 일명 '방석집'이 10곳 넘게 있었고, 여인숙도 많았다고 한다. 방석집이 있던 시장 골목 안쪽 건물들은 현재 대부분 비어있는 채로 방치돼 있는데, '미자네', '엔젤식당' 등 당시 가게이름으로 추정되는 간판들만 덩그러니 건물에 붙어있다.

대룡시장 한가운데에는 1970년대 호황기 때 지어진 시장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자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옛 교동상회 건물이 있다. 당시 '교동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은 교동상회에서 사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상점으로 '교동도의 백화점' 역할을 했다고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1층에는 빵집이, 2층에는 다방이 영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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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적인 실향민 장터인 교동도 대룡시장에서 수십 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 중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성양복점, 철물점 , 일본식 건축물에 들어선 신발가게, 시계방

대룡시장을 이끌어온 주역인 실향민 1세대들이 최근 하나둘씩 세상을 뜨면서 시장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연백군에서 피란 나온 신발가게 주인은 지난해 봄 별세해 가게 문이 닫혔다. 인근에 있는 황해도 출신 노부부가 운영하던 문구점도 2014년부터 주인을 잃은 빈 점포로 남아있다.

교동도의 마지막 시계방을 운영하던 황세환(1939년생) 할아버지는 올해 4월 세상을 떴다. 시계방 출입문 유리 위에는 누군가가 황 할아버지를 추억하기 위해 할아버지 사진이 담긴 종이를 붙여놨지만, 문이 굳게 잠긴 가게 안에는 각종 시계와 수리기구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백식 냉면을 파는 대풍식당 같은 일부 가게는 실향민 2세대가 이어받아 계속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로 대룡시장에는 빈 점포가 점점 늘어날 우려가 크다. 시장을 보존하고 활성화할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동도에 유일하게 남은 양복점 주인 전경수(75) 할아버지는 "시장을 지켜온 실향민들이 돌아가시면서 가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몇 년 후에는 시장의 수명이 다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동도 토박이이자 향토사학자인 한기출 교동역사·문화발전협의회장은 "가게마다 옛 추억과 실향민의 사연이 깃든 대룡시장은 후세를 위해서라도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자산"이라며 "늦기 전에 대룡시장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보존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 =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 =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