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소통·한국정착 위한 '언어교실'
결혼 1년차~6세 자녀 둔 엄마 '다양'
기초부터 차근차근 TOPIC반 6단계
단순암기보다 '생활·체험학습' 중점
국적 다른 350여명 '배움의 꿈' 무럭
"한국드라마 보며 이해하고 싶어요"
33㎡ 남짓한 교실에서 "집에 가자. 비가 온다", 그리고 "가, 나, 다" 등을 힘차게 소리 내며 배우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여성들. 이들이 거창한 꿈 보다는 한국 생활에 적응 할 수 있는 '생활 한국어'를 배우고, 익히고 있는 양평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수업 풍경이다.
국적과 나이, 피부색은 달라도 배움의 목표는 단 하나다. 신랑과 자녀, 시댁 식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한국어 구사 능력이다.
결혼 1~2년 차 새내기 결혼이주민 여성부터 5~6세의 자녀를 둔 가정주부까지 다양한 구성원이지만 '한국어가 어렵다며 왜 배우려 하느냐?'는 질문에는 한결같이 "한국 TV를 보고 웃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정을 표현할 정도의 한국어를 배웠으면 한다"고 답한다.
이들은 그 정도 수준은 되어야 자녀 등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확신(?) 때문에 바쁜 시간을 쪼개 삼삼오오 한국어 교실을 찾고 있다.
양평군에 거주하고 있는 결혼 이주민은 536세대로, 인구 11만여명의 군 단위치고는 결혼 이주민이 꽤 많은 편이다.
양평군 다문화가족센터의 김수목 팀장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결혼 이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나름대로 터득한 몸짓으로 일상 생활에 큰 불편은 없지만 요즈음 새내기 젊은 엄마들은 자녀들이 다문화 가족이란 편견 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문화 지원센터를 찾아 같은 처지의 엄마들과 함께 이를 고민하고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결혼 이주민 여성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기 위해 '가족'이란 프로그램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있다. 가족 내 이중언어 사용 활성화로 소통 증진 및 다문화 정체성 함양, 가족 간 소통을 통한 믿음과 올바른 부모 역할에 대한 이해 증진 교육을 최대 목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사회로의 건강한 정착과 안정된 생활을 돕기 위해 마련된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의 한국어 교육 과정. 지금 이곳에서는 결혼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어를 배우느라 열공 중이다.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의 한국어 교육은 기초반(자음, 모음), 중급반(일상적 의사소통)부터 TOPIC(한국어 능력시험 대비)반까지 총 6단계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며 현재 3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중 유난히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티엔티 투이(28·베트남)씨는 이주 10년차다. 양평군 지평면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학부모인 투이씨는 이주센터를 방문하는 초보 이주여성들의 해결사인 통역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투이씨는 농장을 하는 남편의 뒷바라지 덕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이주센터에 출근한다. 가족 간 갈등, 상담, 직업 선택 요령 등 자국민들의 어려움을 묵묵히 해결해주는 투이씨는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이주센터 내에서는 '왕 언니'로 통한다.
투이씨는 "우리 아이가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보니 문득 저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문화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 매일 이곳에 나와 이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이 일이 보람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투이씨는 또 "센터에 오는 여성들은 그나마 배움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어려운 가정에 시집 온 여성의 경우 남편과 함께 직장에서 일하느라 공부는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다"며 "이런 여성들이 많은 만큼 이들을 위해 더 많은 통역원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직업 상담과 정보를 제공하고 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공간도 확대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중국 칭다오에서 생활하다 5살난 딸과 함께 한국에 온지 1년 남짓하다는 모소연(28)씨.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식당에서 일을 마친후 한국어 오후반에 출석한다. 모씨는 2주차에 들어서면서 자음과 모음을 배우고 있다.
모씨는 "너무 어렵다는 말만 자국어로 연신 되풀이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며 "딸 아이 역시 한국말을 제대로 못해 내가 부지런히 배워 가르쳐 줘야 하는 입장에서 한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고 한국어 공부에 열의를 보였다.
모씨는 또 "15살 연상의 남편이 저에게 너무 잘해 주지만 한국어를 잘 몰라 어려움이 많다. 빨리 한국어를 배워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를 마음껏 시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모소연씨와 친구인 왕이앤(28)씨는 직장이 중국에 있던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지 3년이 됐다. 그녀는 현재 임신 중이며 내년 5월 출산할 예정이다. 태아를 위해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우쿨렐레 연주법도 배우고 있다.
왕씨는 "문화 차이는 있지만 아직 큰 어려움은 없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어떡해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이곳을 자주 찾아 산모와 신생아 건강에 관심을 갖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출산 후 한국어가 능숙해지면 산모 신생아 건강 관리사 인증 및 수료증을 따 나와 같은 초보 엄마를 위해 산모 건강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꿈을 소개했다.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윤영옥 교사는 "여기에 오는 여성들 대부분은 상당한 의욕을 갖고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지만 생활고로 출석에 대한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결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꾸준한 노력과 참여가 절실한데도 그렇지 못한 부분이 안타깝다. 수업의 효과적인 성과를 위해 단순 암기보다는 참여를 통한 체험학습으로 생활 한국어에 좀 더 치중하고 있고 결혼 이주여성들이 직접 교육강사로 나서서 사회적인 편견을 깰 수 있도록 다문화 인식 개선 교육에 할애하는 등 나름의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용문면에 거주하고 있는 쩐티 투아오(24·베트남)씨는 4살과 2살 아들만 둘이다. 시부모가 아이들을 돌봐 주면서까지 부지런히 한국말을 배우라는 배려 덕분에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어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남편이 소를 기르고 있다는 그녀는 "처음 시집 왔을때 너무 무섭고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가족들의 사랑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다"며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완전한 한국어를 구사,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 역할을 하고 싶다"고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그녀는 이어 "다른 학부모들처럼 나도 등하교시간에 학교 앞에서 깃발을 들고 우리 아이들은 물론 학생들의 통학 안전 지도에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의 김수목 팀장은 "양평군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에서는 결혼 이주민에게 한국어 교육은 물론 가족, 인권, 사회통합, 취업, 기초소양교육, 봉사단 운영, 인식개선사업, 상담, 방문교육사업 등 다양하고 포괄적인 결혼 이주민 정착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힘들고 어려울때 한번의 방문만으로도 행복을 찾도록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일하고 있다. 이주민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양평/서인범기자 si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