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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돌봐주는 단 한 명의 교사만 있으면 아이는 변할 수 있다"며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용인 손곡초등학교 권영애 교사.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6명 학생들 체온인사 하루시작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아닌 거울
서로 존중 깨닫게하는 교육환경
과목도우미 '성숙한 배려' 익혀


"한사람에게 받은 존중과 사랑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용인 손곡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만난 권영애 교사(49·여)의 교육철학이다. 권 교사는 "아이를 진심으로 돌봐주는 단 한 명의 교사만 있으면 아이는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부모 못지 않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바로 교사이기 때문이다.

권 교사가 기술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머리를 쓰는 교사'가 아닌 정서적으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가슴을 쓰는 교사'가 되려고 하는 이유다.

올해로 2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권 교사의 하루는 26명 아이와의 '체온 인사'로 시작한다. 교실에 도착한 아이들은 곧장 권 교사에게 다가가 하루 동안 실천하고 싶은 미덕 3가지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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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려' 등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한 아이들은 일주일마다 돌아가면서 같은 반 친구의 '미덕'에 대해 칭찬한다.

아이들은 이날 주인공인 윤지호 군의 미덕으로 끈기 등을 꼽았다. '병원에 입원한 동생을 밤새 돌보고 등교한 자신에게 지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지난주에도 우유를 거르지 않았다'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미덕은 평범할 수 있지만,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었을 모습들이다.

권 교사는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교사를 통해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인성, 존중 등을 배운다. 아이들에게 교사는 가장 큰 '거울'이 된다는 의미다. 권 교사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서로에게 존중을 베풀면서 스스로 존중을 깨우칠 수 있는 교육 환경에 주목한 이유다.

과목별 도우미가 대표적이었다. 권 교사는 수학, 국어 등 모든 과목에 도우미를 정했다. 학생들은 자신 있는 과목의 도우미를 자청했고 다른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싶은 과목도 함께 신청했다. 이후 수업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배려와 존중을 배워 갔다.

도우미를 다시 정하는 주기가 되면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는 표식인 '칭찬 스티커' 등 대가도 받지 않는 순수성까지 배우게 된다. 도우미를 다시 정하는 이 날도 스티커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14명에 달했다.

하현지 양은 "스티커를 받지 않아도 양심껏 친구를 도우면서 이미 나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조금씩 감정적으로 성숙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는 웃음기 없이 '엄격한 교실'
아이들과 진심어린 만남 속 성장
도움손길 필요한 민아도 마음열어
따뜻한 선생님의 길 '행복의 이유'


한때 권 교사도 '엄격한 교사'를 택한 시절이 있었다. 다양한 아이들의 인성과 생활을 바꿀 수 있을지 항상 두려웠기 때문이다. 엄격한 교사의 교실에서는 규칙과 벌칙이 질서가 된다. 권 교사는 "어느 순간 제 모습은 벌칙으로 아이들을 묶어 놓는 감시자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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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돌봐주는 단 한 명의 교사만 있으면 아이는 변할 수 있다"며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용인 손곡초등학교 권영애 교사.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이후 권 교사는 아이들에게 평소보다 크게 화를 내고 소리친 다음 날 아이들에게 화를 낸 이유를 자세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 순간 아이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선생님 어제 화내셔서 놀랐어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말해서 또 놀랐어요"라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갔다.

권 교사와 아이들과의 진심 어린 만남 속에서 어른인 권 교사도 아이들도 함께 성장해 갔다.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김민아(가명) 양도 달라졌다.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등 돌발적인 행동을 하곤 했던 민아 양은 수업 시간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교실 앞으로 달려 나와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

초등학교 1~4학년 내내 체육 활동이 무서워 체육 시간마다 운동장 관람석에 앉아 있던 민아 양이었지만 올해 권 교사 반에 배정된 뒤 2개월여 만에 운동장을 밟았다.

권 교사는 "땅에 발을 딛는 게 무섭다는 아이가 두 달 만에 이뤄낸 변화에 아이들이 모두 달려와 민아 양과 손바닥을 마추쳤다"며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민아 양에게 글을 가르쳐준 것은 교사가 아닌 같은 반 친구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변화에 솔직했다. 민아 양과 같은 반이 됐던 아이들은 처음에는 민아 양을 경계하거나 다가가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이제 교실 뒤편에 아이들이 손수 적은 메모에는 '민아 양을 도울 수 있어 감사하다' 등 민아 양의 존재만으로도 감사를 느끼는 아이들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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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돌봐주는 단 한 명의 교사만 있으면 아이는 변할 수 있다"며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용인 손곡초등학교 권영애 교사.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아이들은 도우미를 정하는 시간이 되면 민아 양에게 '네 말에 귀 기울이고 너를 돌봐주고 공부를 재밌게 가르쳐줄게', '쉬는 시간에 재밌게 놀고 점심시간에도 같이 순서를 기다리자'며 서로 돕겠다고 나선다. 5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민아 양이 지목한 아이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유상은 양은 "선생님이 우리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을 느낀다"며 "선생님이 우리를 맞아줄 때 존중받는 것 같아 아침에 교실에 들어오는 게 좋다"고 말했다. 교사에게 존중받은 아이들은 자존감을 느끼고 자신을 존중하게 됐다.

'내가 태어나서 감사하다', '내가 존재해서 감사하다' 등 자신이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존재라고 믿는 아이들의 메모는 교실 곳곳에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실수하더라도 장점을 찾아주고 기다려준다', '우리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등 자신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권 교사의 모습을 통해 배려와 존중을 자연스럽게 깨우쳐 갔다.

권 교사는 "이게 바로 따뜻한 선생님의 길이 행복한 이유"라고 말했다.

/조윤영기자 jy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