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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오전 6시 30분께 해가 떠오를 무렵 인천 연평도 남측 꽃게 어장에서 한 꽃게잡이 배가 조업 구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새벽녘 40여분 달려나가 그물 작업
낮조업만 가능 쉼없이 달고 걷어올려
봄과 달리 줄줄이 매달린 꽃게 "으쌰"
선미 가득 채우고 12시간만에 입항
부두선 밤늦도록 꽃게 떼어내기 분주
서해5도 주민 생계달린 '애환의 바다'


대한민국 서해 최북단 어장인 인천 옹진군 서해 5도 앞바다. 백령도 어민들은 이곳에서 까나리를 잡고, 대청도 어민들은 홍어를 잡는다. 그리고 연평도 어민들은 꽃게를 잡아 생계를 유지한다. 서해 5도 어민들의 삶의 터전인 이 바다가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에 짓밟히고 있다.

매일 수백 척의 중국어선은 최북단 백령도부터 한강하구까지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넘나들며 우리 어장을 싹쓸이해가고 있다. 눈 뜨고 당하기만 했던 어민들이 중국어선을 직접 나포하는 등 집단행동을 하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지만, 관심은 그때 뿐, 이후 근본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경인일보는 지난 9월 21일 '분쟁의 바다'라는 멍에를 짊어진 연평도 꽃게 어장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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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선 불법조업 아픔 겪은 연평도 꽃게 어장, 분쟁의 바다는 아직 잠잠하지만…

21일 오전 5시 45분께 아직은 컴컴한 새벽 인천 옹진군 연평도 당섬 부두에서 꽃게잡이 어선 '명랑호'에 몸을 실었다. 선주와 선장, 선원 등 6명과 취재진 2명, 총 8명을 태운 10t급 어선 명랑호는 최고 속도 20노트로 연평도 남쪽 해역을 향해 달려갔다.

1노트가 1.8㎞/h 정도니까 명랑호의 최고속도는 자동차 시내 주행 속도에도 못 미치는 35㎞/h 정도에 불과했지만, 체감 속도는 실제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굉렬한 엔진음으로 어둠을 뚫고 4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연평도에서 남쪽으로 13㎞가량 떨어져 있는 꽃게 어장. 슬며시 해가 떠오르면서 소연평도가 멀지 않게 보였고, 그 뒤로 연평도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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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당섬부두에서 출항하고 있는 꽃게잡이 어선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출항 무렵 거칠었던 파도는 조업 구역에 도착하자 어느새 누그러져 잠잠했다. 엔진 소음도 잦아질 무렵 20~30m 간격으로 하얀색 부표 20여 개가 줄지어 떠 있는 해역에 다다랐다. 선원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작업에 들어갔다. 풍어를 기원하고, 아무런 사고 없이 조업이 끝나기를 바라는 연평도 어민들의 하루가 시작됐다.

아득한 수평선,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던 이 바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어민들이 중국어선의 불법조업과 사투를 벌였던 '분쟁의 바다'였다.

연평어민들은 지난 6월 5일 오전 5시 23분께 서해 NLL 남방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어선 2척을 직접 나포했다. 어민들은 중국인 선원들이 잠을 자는 틈을 타 중국어선 2척에 로프를 걸어 나포해 연평도까지 끌고 와 해경에 넘겼다. 중국어선 불법조업 만행을 세상에 알린 날이었다.

당시 나포 현장에는 명랑호 선장 박재원(51)씨도 있었다. 연평도에서 태어나 평생 뱃일만 해온 그다. 3개월이 지났지만, 박씨는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땐 꽃게도 안 잡혔고, 정부니 해경이니 우리 어민들만 통제하고 '짱XX(중국인을 낮잡아 부르는 비속어)'은 잡을 생각 없이 나 몰라라 하니까 화가 나서 직접 잡아간 거지. 그건 계획된 것도 아니었고, 바다에 나가 보니까 중국어선들이 잔뜩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 배 저 배 내쫓으러 갔다가 가까이에 있으니 잡아온 거지."

올해 4~6월 봄 어기는 '꽃게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악의 어획량을 보인 때였다. 올봄 연평도 꽃게 총 어획량은 15만7천㎏으로 작년 봄(43만5천㎏)에 비해 73%나 감소했다.

2011년 이후 최악의 어획량이었다. 중국어선이 우리 해역을 제집 드나들 듯이 활개를 치고 다닐 때라 어민들의 속도 까맣게 타 말라가고 있었다. 나포 사건 직전 서해 5도의 중국어선 불법조업 건수는 4월 5천898건, 5월 6천682건으로 하루 평균 200여 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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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자망에 그물을 다는 작업을 하고 있는 선원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여름철 금어기가 지나고 9월부터 가을 어기가 시작됐지만, 이날 연평도 어장에서는 중국어선을 한 척도 볼 수 없었다. 전날 연평도 북쪽 끝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봤던 북한 쪽 해역에서도 육안으로 보이는 중국 배는 3~4척에 불과했다.

최근 중국 어선은 지난 봄에 비해 50%가량 줄어들었다고 한다. 우리 해경의 단속이 강화됐기 때문인지, 북 핵실험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로 몸을 사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어선들은 언제든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어민들은 설명했다.

이날 명랑호에 함께 탄 선주 성도경 연평어민회장은 "지금은 조용해도 중국 최대 명절인 중추절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10월에 본격적으로 꽃게가 실해지면 슬슬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며 "중국어선은 여전히 북한 쪽에 머물며 기회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눈 뜨고 빼앗긴 바다, 내 바다에서 왜 내 마음대로 일하지 못하나

명랑호를 비롯한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은 대부분 닻자망 어선이다. 닻을 바다 밑으로 내려 고정해 놓고 그물을 매달아 꽃게를 잡는 방식인데, 그물에 걸린 꽃게는 일일이 떼어낼 수 없어 닻과 그물을 고정하는 밧줄, 부표는 남겨두고 그물만 통째로 찢어 섬으로 가져와서 떼어낸다.

이날 명랑호의 첫 작업은 전날 그물을 뜯어낸 닻자망에 새 그물을 다는 일이었다. 선원 4명이 2인 1조로 선수 양쪽에 자리 잡고 선장과 선주의 지휘에 따라 반 투명색 그물을 능숙하게 달았다.

배 위로 어른 손목 굵기 만한 밧줄 두 개가 3m 정도 간격을 두고 나란히 올라오면 밧줄과 밧줄 사이에 그물을 엮는 단순하지만 고된 작업이었다. 400~500m의 그물 하나를 '한 틀'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어선 한 척당 30틀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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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호 선원들이 갑판에 둘러앉아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반찬은 즉석에서 끓인 꽃게탕과 김치, 밑반찬 등. 선원들은 10분만에 밥 그릇을 비우고 바로 조업에 나섰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작업은 말 그대로 '쉴 틈 없이' 진행됐다. 한 사람이라도 삐끗하면 전체 작업이 어그러지는 호흡이 중요한 작업이다. 그물 한쪽 끝자락에서 반대편으로 배를 서서히 이동시키면서 그물을 달아야 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 뒤처져서는 안 된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기우뚱거리는 배에서 선원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닻자망 한 틀에 그물을 다는 데 걸린 시간은 40여 분. 선원들은 다음 그물로 이동하는 5분 남짓 시간에 담배 한 개비 피우고 빵과 우유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렇게 부지런히 해야 겨우 점심 먹기 전까지 겨우 5~6틀을 작업을 할 수 있다. 한 틀이라도 더 작업해야 다음 날 잡아들이는 꽃게의 양도 늘어난다.

꽃게가 아무리 많이 걸려도 2~3일 내 그물을 걷어 올리지 못하면 꽃게는 죽어버린다. 꽃게잡이 어민들이 중국어선 불법조업 피해 대책으로 '조업시간 연장'을 부르짖는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해 보였다.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5도는 북한접경 지역이라는 지리적 요인 때문에 원칙적으로 야간조업이 불가능하다. 모든 입출항은 군부대의 통제 아래 놓여 있고, 해경의 관리 아래 움직여야 한다. 이곳에서 조업은 해 뜨고 난 후부터 해지기 전까지만 가능하다.

점심시간 한가로이 갓 잡아올린 해산물을 회로 떠먹거나 라면에 꽃게를 넣어 끓여 먹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많이 봤던) 낭만적인 풍경은 없다.

이날 선원들은 사발 한 그릇에 미리 준비해간 밥이며 김치며 고추장 물만 넣고 끓인 꽃게탕을 한꺼번에 때려 붓더니 마시듯이 먹고 일어나 다시 그물을 잡았다. 이 생활에 이골이 났는지 "쉬었다가 합시다"라는 얘기 한 번 나오지 않았다.


올 봄 하루 200여건 中불법조업 활개
작년보다 어획량 73%나 줄어 '최악'
잠시 뜸해진 중국어선 북녘 3~4척만
호시탐탐 '기회 엿보기' 마음 못놓아
포격등 이슈때만 정치권 '반짝관심'
정부의 미봉책 반복… 속타는 '漁心'

 

"야간 조업만 허용되면 어선은 바다에 정박해 놓고 운반선만 왔다 갔다 하면서 여유롭게 조업을 할 수 있는데, 시간에 쫓겨 일하다 보니까 사고 위험도 있고 하여간 힘든 점이 많아. 군사적인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중국어선은 내버려 두면서 우리만 통제를 당하는 것 같아 억울하지" 선장 박씨의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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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이 그물에 한가득 걸린 꽃게를 걷어올리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정부부처는 지난 7월 '중국어선 불법조업 근절 및 서해5도 어업인 지원 방안'을 내놓으면서 연평어장 서쪽 끝단 조업구역 14㎢를 확대해주고 조업시간은 일출 30분 전, 일몰 후 1시간 연장을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것도 조업시간 연장은 꽃게가 줄어들면서 대체 어종으로 떠오르는 새우가 많이 나는 소연평도 남측 구역에 한해서였다.

어민들은 30분~1시간 남짓의 조업시간 연장은 '사탕발림'에 불과한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실질적으로 허용돼야 하는 것은 야간 조업이라는 것이다. 연평도 어민들은 조업시간이 됐다고 해서 무조건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개와 풍랑주의보가 내려지면 하루를 버려야 하고, 육지로 피항했던 지도선과 함정이 연평도로 도착해야 출항할 수 있다. 어쩌다가 해상에서 군사 훈련이 있을 때에도 조업 통제를 받는다. 우리도 마음대로 어업 할 수 없는 바다를 눈 뜨고 중국 어선에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어민은 없다.


■꽃게 가득 실은 배, 연평어민들이 부르는 풍어가(豊漁歌)

점심을 눈 깜짝할 새 해치운 뒤 본격적인 꽃게 수확에 들어갔다. 이날 걷어 올린 그물은 이틀 전에 쳐놓은 것이다. 올가을 꽃게 어획량은 나쁘지 않다. 지난봄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그물에 한가득 꽃게가 매달려 올라왔다.

꽃게 수확은 그물 치는 것과 반대로 하면 되는 작업이다. 닻자망 그물을 끌어올려 선수에 걸친 뒤 배를 이동시키면서 밧줄에 달린 그물을 칼로 뜯어내는 작업이다. 작업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는 것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으라차! 어여차! 어이! 어이!" 선원 중 가장 고참이 구호를 외치면 나머지 선원들이 박자에 맞춰 꽃게가 달린 그물을 끌어올렸다. 그물은 배에 달린 장치에 걸어놓으면 자동으로 당겨 올라오지만, 꽃게가 많이 달려 선원들도 거들어야 한다. 힘들지만 주렁주렁 매달린 꽃게를 보면 없던 힘도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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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당섬부두 물양장에서 주민들이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어내 크기별로 분류하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아직 꽃게는 알이 많이 차지 않았고 '물렁게'도 더러 잡혔지만, 지난봄에 비하면 풍년이다. 걷어 올린 꽃게는 그물째 선미로 옮겨졌다. 5틀 정도를 걷어 올리자 선미가 꽃게로 가득 찼다. 쓸만한 꽃게만 어림짐작으로 대충 추려보니 30상자는 거뜬히 나온단다.

한 상자의 무게를 40~50㎏ 정도로 계산하면 1천200~1천500㎏ 정도의 어획량이다. 풍년인 데다 아직 꽃게 살이 꽉 차지 않아 수협 위판가격으로 1㎏당 4천~5천원선에 거래된다고 한다. 시장에서는 꽃게 1㎏이 1만원 대로 팔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꽃게는 서해5도 주민들의 주된 생계수단이다. 백령, 대청, 연평 등 서해 5도에 등록된 어선은 모두 502척으로 이중 꽃게 어선이 절반인 256척에 달한다. 영흥과 덕적, 북도, 자월의 꽃게 어선 92척보다 훨씬 많다. 꽃게잡이에 종사하는 사람(선원)들도 서해 5도에만 820여명에 달한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은 이들의 삶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 연평도는 밤에도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어선에서 내린 꽃게 그물에서 꽃게를 떼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봄 어기 연평도를 찾았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낯선 광경이다.

배 한 척당 20여명이 달라붙어 꽃게를 뜯어내야 자정 전에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연평도에서만 하루 평균 30여 척이 출항하니까 단순계산으로도 동원되는 사람만 하루 600여명이다.

연평도 인구가 2천100여명이니 30~40%에 달하는 주민들이 꽃게에 매달리는 셈이다. 그마저도 요즘 일손이 부족해 인천에서 사람을 불러다 쓸 정도라고 한다. 꽃게가 잡혀야 선원들의 지갑도 열린다. 숙박업소와 식당 등 모든 곳이 꽃게에 좌지우지된다.

선장 박씨는 "우리가 꽃게를 못 잡으면 연평 주민들도 타격이 커. 꽃게 따는 작업이 시간당 1만원인데, 할머니고 할아버지고 뭐 다 달라붙으니까 어민들이 경제를 살리는 셈이지. 다들 꽃게로 생계를 이어가니까"라고 말했다.

■서해5도에 사는 게 애국이라고?

각종 안보이슈가 터질 때마다 "서해5도에 사는 것이 애국이다"라는 말이 나오곤 한다. 인천에서 뱃길로 222㎞ 떨어진 백령도와 122㎞ 거리에 있는 연평도는 사실 북한 땅과 더 가까운 지역이다. 중국어선 불법조업 문제가 터지면서 서해5도 어민들과 옹진군은 어업보상 및 중국어선 퇴치 대책 외에도 실질적인 정주 여건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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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오후 연평도 북측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쪽 해역에 중국어선들이 떠 다니고 있다. 올 가을 중국어선의 숫자는 지난 봄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호시탐탐 연평어장을 노리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사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렇지 연평도에 살고 싶지 않아. 나도 몇 년 전만 해도 나름 내 배를 부리면서 살았는데, 꽃게잡이가 망하면서 파산하고 선장 기술로 다른 사람 배에 올라타게 됐지. 여기 뭐가 있어. 관광지가 있기를 해 먹거리가 있기를 해. 징그러워 연평도. 마지못해 사는 거지…."

선장 박씨는 고향 연평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풍랑이 일면 배가 뜨지 못해 발이 묶이기 일쑤고, 꽃게잡이를 그만두면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이는 백령도나 대청도 어민들도 마찬가지다.

2010년 11월 북한이 연평도에 포탄을 퍼붓던 날 박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선에 몸을 싣고 인천으로 피란했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어떤 상황인지 가늠조차 안 돼 서로 도망치느라 바빠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었다. 그래도 결국 고향 연평도로 돌아왔는데, 불타버린 집만 복구됐지 달라진 것은 없단다.

서해5도에 안보 이슈가 터지면 늘 정치권과 행정당국의 관심이 몰리면서 어민들을 만나고 건의사항을 듣는다. 지난 6월만 해도 인천시장과 지역구 국회의원, 해수부 관계자, 정치인 등 안 다녀간 사람이 없었다.

이는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태도 마찬가지였고, 서해 5도와 관련한 현안이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건의사항을 듣고 그럴듯한 대책을 내놓고, 어민들을 안심시켰다.

연평도 포격사태 이후 만들어진 서해5도종합발전계획은 현재 섬 주민들의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 속에서 옹진군이 변경 용역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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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표 사이로 보이는 꽃게잡이 어선.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중국어선으로 인한 조업 피해 보상, 서해5도 여객선 대중교통화, 공공근로 확대, 관광 인프라 구축사업 등 손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불법조업 이후 해수부가 내놓은 대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오후 나절 꽃게를 한창 수확하던 명랑호는 다시 빈 그물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남은 그물을 달고 오후 5시께 연평도 복귀를 알리는 엔진 시동을 걸었다.

출항한 지 꼭 11시간여 만이다. 선원들은 그제야 주전자에 물을 끓여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졌다. "쫓기는 몸이니까 이름이고 뭐고 물어보지 마슈"라며 조업 내내 인터뷰를 거절했던 선원도 기자에게 커피를 건넸다.

"원래 해 떨어지는 시간까지 꽉 채웠다가 돌아가는 데 오늘은 특별히 기자 양반들이 타서 조금 일찍 돌아가는 거야." 선장 박씨가 연평도 당섬 부두에 발을 들이면서 말했다. 선장은 꽃게를 그물째 포클레인에 매달아 부두 위로 올렸다.

"별 취재 할 것도 없고, 할 말도 없는데 뭐하러 힘들게 꽃게잡이 배를 타려고 하냐"며 핀잔을 줬던 선장 박씨는 조업이 끝나고 기자와 함께 당섬 부두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한숨 돌렸다. '같은 배를 탄 운명'이라는 게 이런 건지 12시간 남짓 어선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연평도 어민들의 애환과 고충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석양이 질 무렵 연평도 주민들이 꽃게 작업을 위해 당섬 부두에 불을 환하게 밝혔다. 어선 별로 나뉜 구역에 자리를 잡아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어내 물로 씻고, 크기별로 분류했다. 어획물 운반선이 도착하기 전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다. 어민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철 지난 유행가에 어깨를 들썩였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