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돌아가시자 3년간 여묘살이·부친 슬픔 달래려 날마다 친척 일가 불러 대접
과천동에 위치한 '효자 정려' 市 향토유적 지정·묘소는 용인시 남사면으로 이장
2009년부터 '입지 효문화 예술축제' 추모… 정조 효행 관련 '무동답교놀이' 유명
그 덕분에 효행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많다. 부친의 병환이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부친의 입 안에 흘려넣어 살렸다는 효자, 홀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부잣집에 스스로 팔려간 효녀,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위기에 처하자 어린 자식을 호랑이 먹이로 내어 준 효부의 이야기는 언제나 놀라우면서도 또한 익숙하다.
그들은 효자, 효녀, 효부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전해지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효행과 효심이다. 효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선조들은 이름 대신에 효의 정신이 모두에게 깃들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름난 효자, 효녀, 효부는 있었다.
과천 막계에서 출생한(1505~?) 입지 최사립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다. 부지런히 학문을 익혀 소학(小學)을 행동 강령으로 삼고 부모를 섬겼다. 평소 술을 좋아하던 부친이 병을 얻었다. 추운 겨울 약을 써도 낫지 않았는데, 부친은 최사립에게 "내가 칡꽃을 먹으면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칡은 흔한 식물이지만, 칡꽃은 한여름에 볼 수 있다. 최사립은 칡꽃을 구하려 애썼지만 구하지 못했다. 그는 정한수를 떠놓고 신령에게 기도했다. 정성이 하늘에 닿아 죽어있던 칡넝쿨이 방 벽을 타고 뻗어 들어와 꽃을 피웠다.
이 꽃으로 갈화탕을 만들어 부친에게 드리자 병이 깨끗이 나았다. 부친이 임종하기 전 몹시 수박을 먹고 싶어 했지만 끝내 구해드리지 못했다. 때문에 최사립은 남은 평생 수박을 먹지 않았으며 수박을 볼때마다 몹시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가 아플 때도 그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해 어머니는 5년을 더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묘 옆에 막을 짓고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했다. 홀로 남은 아버지의 슬픔을 달래기위해 날마다 친척 일가를 불러 모아 술과 고기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남아있다.
지극한 효성은 왕에게 전해졌다. 경기도 관찰사 윤은필은 중종에게 장계를 올려 효자문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중종 때 참의로 추증되었으며 선조때 정려(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함)를 받았다.
최사립의 아들 최덕순도 효성이 지극하여 선조 때 정문이 세워졌으며, 손자 최기 역시 인조때 정려를 받아 3대에 걸쳐 정려가 세워졌다. 효자 정려는 과천시 과천동에 있으며, 과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됐다. 최사립의 묘소는 이장돼 용인시 남사면에 있다.
효는 근래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귀하다. 예전만큼 효의 가치가 높지 않다. 효 보다 귀한 것이 많아졌다. 전통적 개념의 효 문화는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현대생활과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최사립이 정성으로 피운 칡꽃은 지금의 상식에는 어긋나, 진실성을 의심받는다.
효에 관한 이야기는 드물어졌고, 효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그렇다. 한국효문화센터 최종수 이사장은 중국 유학자 장재(張載)가 말한 효의 정의를 들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효의 진짜 모습을 설명했다.
그는 "장재는 모든 사람이 나의 동포요, 나의 동반자이니 그들을 보호하고 살피는 것은 자식으로서 공양하는 것이요 이를 즐겁게 여기고 근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효라고 했다"며 "효의 덕목을 넓게 해석해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돌보는 모두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했다"고 말했다.
또한 "모두에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대에 맞는 효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고 했다.
과천에 있는 한국효문화센터는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입지 효문화 예술축제'를 열어 최사립 선생을 추모하고 효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과천은 정조의 효행과 관련된 무동답교놀이도 유명하다. 정조가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으로 행차할 때, 과천의 부락민들이 무동놀이를 펼쳐 그의 효행을 찬양하고 능행길을 환송했는데, 무동 놀이에 다리밟기인 답교놀이가 결합한 민속놀이가 과천무동답교놀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명백이 끊어진 것을 1981년 민속학자와 지역민의 노력으로 복원됐다.
28일 열리는 8회 입지효문화예술축제는 효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생활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바른 인성으로 갖도록 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었다.
최 이사장은 "청소년들의 효의식을 조사하면 과반수가 효도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이 어떤 건지 모른다고 답한다"며 "요즘 청소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실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께 공수하고 인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 효를 주제로 한 토론의 장을 열고, 세대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더 나아가 효를 주제로 하는 어린이 동화를 제작하고, UCC 및 음반을 제작하고, 학생들이 3D펜을 이용해 만들 전래놀이 게임을 선보이기도 했다. 전문공연단체와 손잡고 벽상갈화를 원작으로 한 창작무용극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 이사장은 "효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첫걸음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또한 그 덕을 나눌 수 있다는 진리다. 세월이 변해도 낡거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며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고,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는 일이 효"라고 말했다.
글 =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