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분한 사내도 주사기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맥없이 물러나지는 않는다. 이를 앙다문 채 경고한다. "자꾸 나대면 언제 골로 갈지 모른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는 한국사회에서 부당함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항의는 종종 '나댄다'고 받아들여진다. 정당한 행동이라기보다는 개인의 튀는 성품, 혹은 행동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모난 돌을 때리는 '정'에 대한 경고로 보답받곤 한다.
그러나 폭력과 인습, 무관심에 길들여진 사회가 조금씩이나마 변화하는 것은 그들의 나댐이 있기 때문이다.
'족구왕'으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 '범죄의 여왕'은 이요섭 감독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캐릭터의 개성과 장르의 착종은 한국 영화가 자주 놓치는 미묘한 틈새를 파고든다. 덕구(백수장)와 강하준(허정도), 개태(조복래)와 익수(김대현)는 모두 비루하고 안쓰럽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캐릭터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특히 촌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이고 괄괄하면서도 따뜻한 미령(박지영)은 다소 어둡고 밋밋할 수 있는 영화에 색채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수도세 120만원이라는 충격적이지만 소소한 일상적 사건에서 출발해 범죄를 밝혀 가는 과정은 탐정물의 장르적 관습을 그대로 따른다. 캐릭터의 입체성에 비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평면적 전개는 영화를 다소 지루하게 만든다.
스토리가 캐릭터들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떠받쳐주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모성 신화의 무비판적 재생산이라든가 범인 캐릭터의 단순성이라든가 그를 다루는 태도 등에 대해서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장점이 고스란히 아쉬움으로 되돌아오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죄의 여왕'에는 어떤 사랑스러움이 녹아 있다. 그건 아마도 광화문시네마의 존재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