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61.jpg
경기도 문화관광해설사 홍유순씨가 자신의 근무지인 화서문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정년없어 실버세대 관심… 필기·외국어 등 요건 만만찮아
근무일·활동비 적은편 자원봉사도 직업도 아닌 상태 같아
자연경관 매일 만끽 질문하는 아이들 반짝이는 눈빛 보람
계속해서 새로움 발견·유산답사·공부 스스로 성장 '매력적'


노후 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노후준비란 무엇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노후 준비를 한다는 것은 지금 있는 것을 따로 떼어 비축해두는 일 같기도 하고, 비어있는 부분을 빼곡히 채워나가는 일 같기도 하다.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아픈걸 보면 에너지 소비가 꽤 큰 일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untitled-81.jpg
노후를 준비하는 모습은 다양하다. 저축이나 연금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기대하기도 하고, 정년이 없는 직업을 찾거나 오래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노년의 삶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생애 어느 시기나 그렇듯.

홍유순 씨는 올해 일흔살이다. 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로 5년째 활동하고 있다. 요즘은 한 달에 예닐곱 번쯤 수원 화서문안내소로 출근한다. 문은 연 지 한 달 남짓 된 안내소라 아직 낯설지만 화성 성곽 한자락이 손닿을 것처럼 가까워 마음을 의지할 수 있다.

성곽을 따라 심어진 푸릇한 잔디는 청량하고, 성곽의 유려한 곡선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 "노후 준비를 잘 한 것 같아요. 장점이 많은 일이에요. 일을하니 시간도 잘 보낼 수 있고, 남들한테 알려줄 게 있으니까요."

그녀의 노후준비는 여성회관에서 들은 '문화유적답사반'수업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20여 년 학원을 운영하며 강의를 하던 매일매일이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어쩌면 40여 년 전 수원으로 시집왔을 때부터일지도.

"보습학원을 하다가 '이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정리했어요. 2~3년 쉬었는데, 컴퓨터도 배우고, 여행도 다니고. 그러다 여성회관에서 문화유적답사반 수업을 들었는데, 그게 재밌어서 경희대 평생교육원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했어요."

2009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해설사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중국어도 배웠다. 자연스럽게 관광해설사로 관심이 번져갔다. 학원을 경영한 경력과 자원봉사 경험이 도움이 됐다. 수원에 40년이 넘게 살았으니 지역에 대한 정보와 자부심도 충분했다.


untitled-51.jpg

"우리끼리는 '공채'로 뽑혔다고 얘기해요. 문화해설사가 되려면 일정 시간 교육을 받은 후에 필기시험도 보고, 외국어도 할 줄 알아야 하고, 해설 시연도 해야돼요. 여러 사람 앞에서 해설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교육을 다 받고도 시연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만큼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자부심도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경기도에는 9월 현재 540명의 문화해설사가 활동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다. 경기도는 99년 전국 최초로 해설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2011년 관광진흥법이 개정되면서 교육기관을 선정해 위탁운영하고 있다.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자마자 해설사로 나서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계시는 분도 있어요. 해설사로 활동하려면 계속 공부를 해야돼요. 더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해설사로서의 기쁨도 커지는 거죠."

해설사 중 50대가 40%로 가장 많고, 70대는 12%를 차지하고 있다. 여든이 넘어서까지 활동하는 해설사도 있다. 정년 없는, 보람 있는 노후의 직업으로 알려져 실버 세대의 관심이 적지 않다. 그러나 해설사는 직업이 아니다. 경기도 관계자는 "문화해설사는 문체부 지침상 지원봉사자로, 활동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untitled-82.jpg
"직업도 아니고 자원봉사도 아닌 상태인 것 같아요. 자원봉사라고 하기에는 더 체계적인 규정이 있고,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근무 일도 적고, 급여도 충분하지 않죠. 수원에서 활동하는 61명 중 남자는 10명뿐이에요. 이 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으니까요. 직업화되면 더 많은 은퇴자들이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홍유순씨는 근무를 하는 날에는 9시 반 출근해 2~3차례, 많게는 5차례 화성을 돌며 해설을 한다. 중고생들 수학여행 시즌에 특히 바쁘다. 문화유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재밌는 에피소드와 함께 설명하면 반짝이는 눈빛들을 볼 수 있다.

"한 번은 고등학교 과학 동아리 학생들이 왔는데 화성을 공부하러 왔다고 했어요. 화성 축성에 활용된 과학적인 측면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해달라던 아이들의 표정이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그런 학생들을 만나면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화성이 정말 대단한 문화 유산이라는 걸 다시 깨닫기도 하지요. 그런 게 문화해설사의 매력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거요. 해설사가 됐으니까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계속 공부를 하고, 답사도 많이 다니면서 스스로를 성장시켜나가고 있죠."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