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우대칭·일정한 가로세로 비율
체계화된 공정있어야 제작 가능
동아시아 구석기 문화의 '단편'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술성 지녀
연천 전곡리 유적(사적 제268호)은 1978년 미군 병사 그렉 보웬(Greg Bowen)이 처음 발견한 이후 10차례 이상 발굴 조사된 구석기유적이다. 유물은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현무암 대지 위에 형성된 깊이 약 3~8m 정도의 퇴적층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에서 채집된 석기는 4천점 이상인데, 그중에서도 주먹도끼가 단연 돋보인다.
유적의 연대는 약 30만년 전후에 현무암 대지가 형성된 사실과 퇴적층이 만들어지는 데에 걸린 시간을 감안하여 20만년 전후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어 대부분의 교과서와 교양도서에서는 이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고고학회가 펴낸 '한국고고학 강의'라는 개론서에서는 여러 가지 과학적인 분석을 근거로 들어 10만년 이전으로 소급될 수 없다는 주장을 소개하면서 유적의 정확한 편년 설정을 유보하고 있는 입장이다.
어쨌든 이 유적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의 석기는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것으로, 세계 전기구석기문화가 유럽·아프리카의 아슐리안 문화전통과 동아시아 지역의 찍개문화전통으로 나누어진다는 기존의 H.모비우스 학설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이상이 전곡리 유적과 그곳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유물인 주먹도끼에 대한 일반적인 사전적 설명이다. 주먹도끼는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고 크기가 크든 작든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일정하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정형성을 띠고 있으며 규격화되어 있다.
이런 주먹도끼를 만들기 위해서는 돌감의 선택, 기본적인 형태 만들기, 세부적인 잔손질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전 공정이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프로그램화 되어 있어야 만족스러운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즉 마음 속에 설계도가 있어야 하고, 그런 설계도에 따라 정교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손놀림이 있어야 제작이 가능하다.
아동심리발달 단계에서 12세 정도가 되면 '형식적 조작기'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런 '형식적 조작기' 수준의 인지능력, 즉 추상적인 개념에 대하여 논리적·체계적·연역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능력이 있어야 주먹도끼처럼 3차원적이며 대칭적인 물건을 만들 수 있다.
더 나아가 형식적 조작 능력을 갖추었을 경우, 언어적 지능이 비로소 발달하게 된다. 결국 주먹도끼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추상적 개념을 할 수 있으며 그런 추상적 관념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계사적으로 볼 때, 주먹도끼가 지금으로부터 150만년 전 제작되었다는 것은 호모 에렉투스 단계에, 우리 인류는 유인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주먹도끼는 전면(全面)을 가공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손에 잡히는 부분은 원래 대로 두고, 날 부분만을 가공한 경우가 절대적이다. 또 잔손질을 정교하게 가하지 않은 편이어서 거칠고 투박하다. 이런 까닭에 아프리카·유럽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아슐리안 주먹도끼에 비하면 초라한 편이다.
이는 그쪽의 재질이 정교한 조작이 가능한 플린트(flint, 입자가 매우 고운 부싯돌)를 소재로 삼은 데에 비하여, 우리는 석질이 단단하여 마음먹은 대로 모양을 낼 수 없는 규암(硅巖)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전곡리유적 출토 주먹도끼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선사시대 유물이다. 그런데 이 유물에 대한 가치는 전기구석기시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는 주먹도끼가 동아시아의 끝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사실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나 주먹도끼는 그 자체만으로 예술성을 지니고 있으며, 호모 에렉투스 단계에 인간이 입체적 사고와 추상적 관념을 지녔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유럽 문화와는 다른 동아시아 구석기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렇듯 유물 1점이 지닌 가치는 넓고도 깊은데, 지금 우리의 역사 교육은 유물이 지닌 민족사적 가치에만 편중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흥미롭게 가공하여 일반대중에게 제공하는 노력이 요구되며, 그런 작업들이 충실하게 이루어질 때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저절로 깊어질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