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서울 북촌 한옥마을 한 카페에서 신달자 시인은 "모두가 오늘을 힘들어 하지만 알고보면 오늘이 가장 즐거운 때"라며 웃음띤 얼굴로 말하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경제적 가치만 최우선인 자본주의
쓸모없는것 취급받는 행복 요소들
남의것만 관심갖는 '상대적 결핍'
스마트폰 탓 마음의 소통도 줄어


2016년 가을, 서울 가회동 북촌의 하늘은 투명했다. 시인 신달자는 이곳에 2년 넘어 3년 모자르게 10평 남짓한 한옥 공일당(空日堂)을 짓고,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공일당 시정(詩井)에서 길어올린 시어들로 빚어낸 시집 '북촌'을 막 세상에 내 보인 지난 4일 아담한 카페에서 시인을 만났다.

투명한 하늘 만큼이나 청량한 시간을 누리는 시인에게,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상처와 절망을 들이대기가 민망했다. 하지만 문학의 의무가 시대를 직관하는 것이라면, 이미 시인은 오늘을 제대로 통찰하고 있었다.
우리 시대의 한국인이 왜 힘들어 하는지, 그 고단함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또 삶의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시인은 애매하고 모호한 질문에 성실하게 몰입했고, 그녀가 살아낸 수많은 오늘의 누적을 통해 깨달은 '각성'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대한민국은 외견상 건국 이후 문명의 최정점을 구가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세대가 불안하다고 토로합니다. 어떤 연유일까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뚜렷하게 보이는 몇 가지 약점은 있죠. 첫 번째는 잘 살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사회이기 때문에 그간 방심했던 것, 놓쳤던 것들이 속으로 썩고 있다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상황이에요. 우리가 생산해 낸 것 중에는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부정적인 것도 있어요.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악인, 사회 비리를 저지르는 악인 등도 발전과 더불어 사회가 생산해낸 것들이죠. 이는 생산의 양면성입니다. 잊혀지거나 뒤안길에 묻힌 가치도 많죠. 인문학과 예술이 그렇습니다.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부차적이고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되다 보니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겁니다. 두 번째로는 한국인의 DNA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날쌔게 뭔가를 이뤄내고 해 나가는 능력은 으뜸입니다. 그러나 행복을 느끼는 것에는 굉장히 미숙하죠. 결정적 결핍이에요. 갑자기 돈을 번 사람이 잘 쓰는 데는 미흡하듯, 사람이 즐겁게 살기 위해 할 것들을 모르는 사회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입니다. 행복은 조건 없이 느껴야 진정한 행복이에요. 한국인은 묘하게 조건을 따지죠. 나의 조건과 위치를 늘 열악하게 인식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대접하지 않고 무시합니다. 집에 키울만한 화분이 있어도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무시하고 키우지도 않는 겁니다. 그러니 행복할 리 없죠. 절대 오지 않는 것, 내 것이 아닌 것, 남이 가진 것에만 관심을 가지며 계속해서 상대적 결핍을 갖고 사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러한 결핍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닐 텐데요.

"받아들이지 않으니 불행을 느끼는 겁니다. 옛날에는 신분격차를 제외하곤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비슷했어요. 신분의 차이는 사회 통념이었기 때문에 숙명의 하나로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비슷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부자가 되고, 자식을 유학 보내고, 점점 차이가 벌어졌어요. 이를 불행으로 여기는 풍조는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 하는 자본주의의 숙명에서 비롯된 거겠죠.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고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니라 이 가치에만 매몰돼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행복의 조건을 물어보면 가장 먼저 공통으로 언급하는 것이 건강과 경제력입니다. 그러나 유럽권 국가들은 그 다음 조건으로 취미와 자기계발, 기부 등 건강과 경제력을 즐기는 방법을 논하는 반면, 한국은 행복의 세 번째 조건으로 사회적 지위를 꼽는다네요.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한다고 나름의 행복이 없을까요? 당연히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사회가 그 행복을 무시합니다. 마치 행복이라는 틀이 정해져 있고, 거기에 속하는 계층이 따로 있으니 그 외는 모두 불행하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공동체라는 가치가 점점 힘을 잃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그렇게 보이네요. 끼니 때우기가 어렵던 예전에는 이웃을 만나면 밥을 먹었는지, 어디 가는지 안부를 물었지만 요즘은 '아버님은 뭐 하고 지내시니?', '자식은 좀 어떠니?' 같은 남과 비교되는 질문이 안부 인사를 대신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외국인은 보통 일반적 안부를 많이 묻죠. '좋은 아침'이라던가 그날의 날씨, 기온 등 남과 비교되는 부분이 아니라 공통으로 즐길 수 있는 행복을 서로 찾습니다. 이 밖에도 말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에요. 낯선 이들과 살아가다 보니 이젠 말이 없어진 것입니다. 쓸데없는 말만 하지 정작 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문제죠. 젊은이들이 뜻을 짐작할 수 없는 줄임말로 대화하는 것도 이런 풍조 때문인 거 같아요. 어떤 언어를 쓰느냐를 떠나 이건 마음의 소통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으로 소통의 창구는 늘어났지만 마음은 사라졌어요. 가족 간의 대화에서도 필요한 말만을 주고받을 뿐,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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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불행하다고 느끼는 시대이니 불행합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시대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자는 부자대로, 권력자는 권력자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각자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야만 하는 겁니다. 삶도 하나의 의무에요. 이를 스스로 포기한다거나, 단지 투정만 부린다든가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의지와 사랑이에요. 힘든 일, 어려운 일, 나쁘고 싫은 것도 내가 품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함께'라는 개념이 더해져야 할 것 같은데요. 최근 소방관의 사망사고,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숨진 청년의 이야기 등 안타까운 소식이 많았는데, 사건이 터지고 나서 주목할 게 아니라 그 모든 이가 함께 살아내는 것이 사회라는 인식이 강화돼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의 불행은 모두 우리 사회 속에 내포된 부분이었어요.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도 많은 것들이 보이고 의미없는 희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함께 하다 보면 타인의 부족함을 지적할 시간이 없어요. 나 스스로도 부족한 점이 많은 걸요. 그런 부족한 부분은 사랑으로 감싸야 하는 겁니다. 스스로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갖고 살아가되,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타인의 부족한 부분을 감싸 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대는 극복이 아닌 살아 내는것"
타인이 갈등을 치유해 줄 수 없어
중요한 것은 삶의 의지와 '사랑'
힘들고 어려운 일 '함께' 품어야

-늘 실천이 문제 아닌가요.

"저는 불행이란 말을 쓰지 않아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올 땐 이 또한 하나의 사고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사고가 났다고 차를 버리진 않잖아요. 결국 그 역시 살아내야 할 과정의 하나일 뿐이라는 겁니다. 저도 여러 번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경우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앞으로 살아야 할 무궁무진한 이유에 내 삶을 더하면 살 이유로선 충분하지 않을까요. 물론 쉽지 않지만 일단 그렇게 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지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견뎌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통은 자연히 잊혀갑니다. 오늘이 고통스럽다고 그 부분을 삶에서 뺄 수는 없잖아요."

-시인으로서 이런 시대에 힘을 보태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글과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글도 말도 읽고 듣지 않는 시대에요. 많이 읽고 많이 말하길 권합니다. 자기 불평을 늘어놓기 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야 해요.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무료로 제공되는 서적과 강의가 무궁무진한 세상입니다. 프랑스 도서관은 방대한 장서로도 유명하지만 그 심벌이 되는 중앙계단이 유명해요. 인생은 계단처럼 한칸한칸 올라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쭉 올라가는 건 인생이 아니에요. 꾸준하지만 묵묵히, 한계단씩 올라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이룬 사람을 보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쭉 올라간 인생이 아니냐고 폄하하죠. 하지만 그들 역시 묵묵히 계단을 오른 사람입니다. 심지어 재벌 2세들이어도 감내했어야 할 심리적, 정서적 고통이 있었을 겁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복잡다단합니다. 치유할 방법이 없나요.

"영웅적인 누군가가 나서 모든 갈등을 치유하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책이 바뀐다 해서 모두가 갑자기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겁니다. 결국 타인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누가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살아갈 방법을 내가 모색해야 합니다. 그래야 화가 줄어요. 사실 인간에겐 무상의 선물이 많습니다. 자연을 즐기는 것, 하늘을 보는 것, 바람을 느끼는 것 등이 모두 무상으로 주어진 행복입니다. 이런 것들을 행복의 요소로 인정않으니 문제입니다. 세대마다 계층마다 안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또 모두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은 잘 알지 못하죠. 세대 별로 각기 고민이 있을 텐데 저 나름의 것과 삶에 적응해야죠. 특히 젊은이들은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누가 도와줄 수도 없죠.

중요한 것은 결국 남이 다듬어 주는 건 없다는 점이에요. 저는 힘든 시절, 산문집을 많이 냈습니다. 시간을 아끼려 화장실에서도 글을 쓰곤 했고 먹고 살기 위해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TV 출연도 서슴지 않았어요. 그러자 곧 비난이 돌아오더군요. 하지만 전 살기 위해 그 행위를 멈출 순 없었어요. 그들은 절 힐난할지언정 도와주진 않았어요. 사회는 칭찬해주기 보다 적대적입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력마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을 믿지 말고 자신을 믿어야죠. 그렇게 자신을 믿는 것이 좀 더 보편화되면 남을 통해 무언가를 구하려고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며 함께 사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삶이 고단한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한마디, 부탁합니다.

"모두가 오늘을 힘들어하지만 알고 보면 오늘이 가장 즐거운 때, 오늘이 가장 희망적인 때입니다. 내일이 힘들더라도 오늘이 있기에 버틸 수 있는 겁니다. 은사이신 박목월 선생님께 '선생님 대표작이 무엇일까요' 이렇게 여쭌적이 있어요. 당연히 '나그네'라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죠. 그런데 선생님 대답이 '아니다. 내 대표작은 오늘 밤에 쓸 시다'이에요. 내 인생을 바꾼 충격이었죠. 우리 삶은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입니다. 모두가 처음 하는 일이기에 누구나 미숙하죠. 그렇기에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대담/윤인수 문화부장·부국장 isyoon@kyeongin.com·정리/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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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은?

약력
-2016.07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2012.07 제24회 거창국제연극제 홍보대사
-2012.06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2012.03 ~ 2014.03 제38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2010.06 제91회 전국체육대회 명예홍보대사
-1997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1993 평택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회 위원
-1992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1943년 경상남도 거창 출생

수상내역
-2016 제29회 정지용문학상
-2012 은관문화훈장
-2011 대산문학상 시부문
-2008 제6회 영랑시문학상 본상
-2007 현대불교문학상
-2004 한국시인협회상
-2002 제6회 시와시학상
-1989 대한민국 문학상
-1964 신인여류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