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만에 동명·학교명 등 변경
우리말 교과서 없어 등사·배포
전문가 "지금도 일본식 표현多"
대중일보가 해방 첫해 신년기획으로 내놓은 <말살하자 왜말, 바로잡자 우리말>은 없어지지 않는 일본어 사용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기사였다. 대중일보는 1946년 1월 1일자, 4일자, 5일자 등 세 차례에 걸쳐 비중있게 보도했다.
대중일보는 2개밖에 안 되는 지면 중 1개 면 대부분을 이 기사로 채울 정도로 일본어 사용 문제를 중요하게 봤다. 대중일보는 "간악한 왜색을 없애고 왜말 말살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했다.
행정기관에서는 해방 후 상용하다시피 하는 일본말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인천시는 동명개정위원회를 조직해 일제가 만든 동명 76개를 바꿨다. 해방 4개월 만의 결정이었다. 중앙동, 관동, 항동, 송림동, 작전동, 만수동, 석남동, 신현동, 문학동, 동춘동 등 현재 법정동으로 쓰이는 동명이 이때 결정됐다.
인천시는 일본 냄새가 나는 학교 명칭 변경도 추진했다. 욱국민학교는 신흥국민학교로, 무정은 문학, 소화동은 부평동으로 각각 변경했다. 이때 결정된 교명 대부분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이런 행정기관의 노력에도 일본말 청산은 쉽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1941년 4월부터 학교의 우리말 수업을 없애고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다.
해방 이후에도 세금고지서와 학교 수업료 고지서는 여전히 창씨명이 찍힌 채 발송됐고, 공연장에선 일본어를 쓰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거리엔 '구스리'(약), '가오루'(향기가 나다) 등 일본어로 된 간판도 많았다.
학교 현장에선 우리말 교과서가 없어 저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조선어학회의 '한글입문'을 교재로 쓰는데, 이 책도 모자라 등사(謄寫)해 써야 했다. "인천중학교 작문시험 과정에선 우리말을 못 쓰는 학생이 태반이었을 정도"라는 당시 임홍재 인천시장의 말에선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도 여전히 전문가들은 일본식 표현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업에 있어서', '범죄와의 전쟁', '안으로부터의 변화' 등은 대표적인 일본식 표현이다. '왜말'을 지우는 일은 해방 71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