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상 박차영씨 리모델링
카페 문 열어 지역명소로 가꿔
작업중 오래된 목재·벽체 발견
공사기간·비용 늘려 한옥 보존
단층에서 1930년 2층으로 증축
한옥 개량해 상점 활용 큰 의미
LP판·서적·축음기·카메라 등
박물관 연상케하는 실내 '눈길'
경인철도가 개통되기 이전 배를 타고 인천항에서 내린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싸리재를 넘어야 했다고 한다. 인천 중구 경동 사거리에서 애관극장을 거쳐 배다리로 넘어가는 길이 이어지는 싸리재는 이제는 택시 운전기사들에게서도 점점 잊히고 있는 낯선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싸리재를 배다리방향으로 걷다 보면 길가 왼편에 '싸리재'라는 간판이 걸린 상점을 만날 수 있다. 이 상점을 '카페'나 '커피 전문점'으로 부르거나 '문화공간' 등의 수식어를 붙이고 있지만, 이곳 주인은 그냥 '싸리재'라는 이름만 붙였다.
인천 중구 경동 169번지에 있는 상점 싸리재는 의료기기 상을 하던 박차영(66)씨가 내부를 다시 꾸며 지난 2013년 10월 문을 연 공간이다. 이 싸리재에서는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오래된 책을 읽어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이따금 열리는 문화·예술 관련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근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답사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건물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이 건물의 내부를 살펴보면 오래된 한옥임을 알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목재 등과 벽체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이 집은 미음(ㅁ)자 형태로 지여진 1900~1920년대 사이에 유행했던 형태의 전형적인 도심형 개량한옥"이라며 "부지면적이 넓었던 전통 한옥과 달리 좁은 부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지어진 것이 이 건물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 건물의 이력을 확인해보면 토지대장에는 1911년부터 기록이 시작되고 건축물대장에는 1920년 9월 9일 신축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10~1920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애초 건물은 단층 한옥으로 지어졌지만 길가와 닿아있는 미음(ㅁ)자 한변은 2층으로 되어있다. 2층 건물에 있는 상량문이 1930년에 증축한 사실을 알려준다.
1930년에 증축된 1~2층의 건축 양식을 보면 일본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통 한옥의 방식도 아닌 여러 방법이 혼재되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문가들은 한옥을 개량해 2층 상점으로 올렸다는 점에서 이 집의 가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배 전시교육부장은 "싸리재의 한자 이름인 '축현'이 개항 이후부터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보면 싸리재 길은 인적이 드문 작은 시골 길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싸리재를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난 시점은 이 고개가 개항장에서 서울 가는 길로 이용되면서부터"라고 설명했다.
또 "개항장에 거주하던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조계 외곽인 조선인 마을을 잠식해 갔고, 그곳의 조선인들은 싸리재 너머로 밀려났는데, 밀려난 조선인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매일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며 "이 길은 개항장 안팎으로 형성된 번화가와 고개 너머 가난한 조선인 마을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경계가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이 싸리재 고갯길을 지키고 있는 상점 '싸리재'를 찾았다.
이 공간에는 오래된 LP 레코드판, 고서적, 축음기, 스피커, 카메라 등이 가득해 마치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상점 주인 박씨는 직접 모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주변 지인들로부터 얻은 것이 많다고 한다.
박씨는 이 자리에서 의료기기 상점을 운영하며 제법 큰 돈도 만졌다. 병원 등 거래처를 관리하는 영업사원을 여럿 두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IMF를 겪으며 내리막을 걸었다.
혼자 겨우겨우 의료기기 상점을 운영해오던 박씨는 카페 문을 열기로 하고 2013년 공사를 시작했다. 박씨가 처음부터 오래된 한옥을 보존하고 가치 있게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하려 건물을 수리하던 중 집의 내력과 마주하면서부터 일이 커졌다. 건물을 뜯어내니 오래된 목재와 벽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함부로 공사해선 안 되겠다 싶어 전문가를 찾아갔다.
"일이 커졌죠. 20일로 계획했던 공사 기간은 5개월로 늘어났고, 공사비용도 애초 980만원 견적에서 7천만원으로 늘어났습니다. 갑자기 오래된 한옥을 살려보겠다는 저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미쳤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공사 내내 들리던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공사가 끝나고 가게 문을 열자 탄성으로 바뀌었다. 박씨의 바람은 소박했다.
그는 "아름다운 보석이 보석함에 있을 때보다는 누군가가 그 보석을 썼을 때 더 빛이 발하는 법"이라며 "개인적인 욕심에 공간을 만들긴 했지만, 이 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또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천에 이런 공간 하나쯤은 오랜 시간 계속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명소로 가꿔가겠다"고 덧붙였다.
글 =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사진 =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