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오는 11월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불복하겠다는 뜻을 시사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지만, 패자가 승복하든 안 하든 선거결과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미 abc뉴스와 AP통신 등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 같은 태도는 미 대선 역사상 전례 없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끔찍한 것이지만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패자가 승복하지 않아도 선거결과는 바뀌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보수 성향의 헌법 전문가 제임스 봅은 "우리의 선거 시스템에서는 패자가 승복하든 안 하든 (선거결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선거인단 투표는 최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패자의 승복은 미 대선의 전통일 뿐 선거법에 규정된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패배 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만약 2000년 대선 때처럼 투표 결과가 초박빙일 경우 트럼프는 선거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검표를 요구할 법적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또 만약 그가 주장한 대로 투표 후 선거부정이 있었다고 믿는다면, 부정행위가 있다고 의심되는 주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낙승한다면, 트럼프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결과를 바꾸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경우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작다.

이처럼 트럼프가 승복하지 않는 것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이는 미국 민주주의와 정치 시스템의 심장부를 건드린 것으로 평가된다.

더 나아가 법정을 넘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소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거에서 진 후보의 승복은 그 지지자들이 선거를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가 연일 '선거조작' 주장을 하면서 이에 동조하는 지지자들은 클린턴이 승리할 경우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클린턴을 감옥에 보내고 총살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트럼프와 그 캠프는 그들의 주장을 변호하는 데 민주당 앨 고어와 공화당 조지 W. 부시가 재검표 사태와 연방대법원 판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최종 승부를 가린 2000년 대선의 예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상황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미주리대 법학과 교수 리처드 루번은 "당시는 투표가 이뤄진 뒤 투표와 관련한 법적 문제가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에 대해 사전에 비합법화하려는 시도로, 미국 정치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고어는 대선 패배를 인정했다가 플로리다 주(州) 개표논란이 일면서 입장을 번복, 재검표를 요구했지만, 연방대법원이 재검표 중단을 결정하자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했다.

당시 고어는 전체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부시에게 53만7천여 표 앞섰으나 플로리다에서 537표 차로 부시에게 지면서 선거인(당시 25명)을 빼앗겨 전체 선거인단 투표에서 266 대 271로 분패했다.

2000년 외에도 대선 투표 결과를 놓고 패배한 후보 측에서 정치적 사기라고 주장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투표가 이뤄진 이후에나 불거졌으며 결국 대부분은 평화적 정권 이양과 국민 단합 등을 위해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전통을 따랐다고 AP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