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각은 그의 권력에 붙은 7꼬리표 같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의 기억은 작은 묘비가 전부이다. 묘비에 적힌 생년월일과 이름은 그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묘비는 그의 기억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죽었다. 기억은 침묵으로 남는다. 카메라가 그들의 침묵과 망각을 응시한다.
최승호의 '자백'은 단단하다.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으로부터 출발하는 사십여 개월간의 기록은 숱한 부정과 부인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검사와 국정원 직원,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에 이르기까지 질문은 대상을 가리지 않지만 돌아오는 것은 얼굴을 가린 서류봉투와 우산, 카메라를 가리는 손과 침묵, 거친 말들과 고장난 기계처럼 반복재생되는 말들 뿐이다. 힘으로 타인의 기억을 조작하고 왜곡하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마저도 조작한 듯하다.
그러나 감독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질문은 돌과 같다. 단순하고 세련되지도 못하지만 단단하다. 그 단단함이 카메라를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
단단한 것이 감독의 질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법원의 전경을 자주 비춘다. 진실을 규명하는 법정이 주요 배경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유가려 씨의 심문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오빠 유우성이 간첩임을 진술한다. 목소리는 떨리고 긴장되어 있다.
그녀의 기억은 오랜 기간에 걸친 협박과 회유로 조작된 것이다. 증인뿐 아니라 증거로 제출된 사진과 문서들 역시 위조된 것이다. 재판은 온갖 거짓 기록들의 향연이 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간첩조작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다. 거대하고 단단한 법원에서.
법원의 전경이 비춰질 때마다 머릿속에 오버랩되는 영상이 있다.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자살한 한준식 씨의 묘비이다. 비석에 적힌 한종수는 그의 이름이 아니다. 생년월일도 틀리다. 거짓과 조작은 한 개인의 죽음 앞에도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자백'은 단단한 것들이 충돌하며 불꽃을 만든다. 그것은 아마도 역사의 불꽃일 것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dupss@nate.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