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평생 봉사하다 노후를 챙기지 못한 은퇴 목회자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안식처를 지은 나광덕(사진 오른쪽)대표와 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백형기 관장은 '누군가를 위해 산 삶'에 대한 공경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배상록기자 bsr@kyeongin.com

노후준비 못한 목회자 40여명 안식처
사업 부분 정리·아파트 처분해 설립
운영비 부족해도 "봉사할수 있어 감사"


2016103101002012900101012
"평생 헌신하며 사신 분들이 정작 늙어서 자기 몸 하나 맡길 곳 없는 사회라면, 누가 그들에게 '사욕을 버리고 일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화성시 봉담읍 덕우리 '광명의 집'은 미처 노후준비를 하지 못한 은퇴 목회자들의 안식처.

지난 2004년 문을 연 뒤 현재 적게는 71세 '막내'에서 최고령 96세에 이르기까지 40여 명의 전직 목사 부부들이 모여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은퇴한 목회자들의 시설. 으레 교단의 지원으로 이뤄졌음직한 이 복지시설은 놀랍게도 한 독지가가 내놓은 사재로 건립됐다.

용인 송전휴게소 나광덕(57) 대표가 사업을 일부 정리해 가며 수십억원 거금을 선뜻 내놓은 건 목사-교인 관계였던 백형기(80) 관장과의 오랜 인연에서 비롯됐다. 교단 총회장까지 지내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백 관장은 지난 2001년 돌연 자원은퇴와 함께 해외선교의 험한 길을 택했다.

청년시절부터 백 관장을 멘토로 의지했던 나 대표는 그의 은퇴이유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또 편안함을 버리고 진정한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극구 만류에 나섰다.

그가 평소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 반지하방을 전전하는 은퇴 목회자들을 보살폈던 사실을 알고 있던 나 대표는 백 관장을 설득 끝에 "그럼 그분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테니 목사님이 맡아서 봉사를 해달라"고 간청했다.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싶은 게 일생의 꿈이었지만 '먼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는 생각이었다.

운영하던 사업체를 부분 정리하고도 비용이 모자라자 부인 김명희 씨는 부창부수 유일하게 자기 명의로 돼 있던 아파트를 처분해 보탰다.

"관장님의 장인어른 역시 일제 강점기 교편생활과 목회활동으로 평생을 봉사하신 분이셨는데, 노후에는 기도원 방 한칸에서 기거하다 돌아가셨답니다. 그걸 몹시도 안타까워하셨는데, 스스로 같은 길을 가시려고 하더군요.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습니다."

나 대표는 "독립운동가든, 공직자든, 성직자든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은 사회적 시스템으로 최소한의 보장이 이뤄져야 건강한 사회"라면서도 자신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라고 몸을 낮췄다.

광명의집은 사회복지시설이지만, 은퇴 목회자들을 위한 시설인 탓에 정부지원을 받지 못한다. 후원금만으론 살림이 어려워 노인들이 텃밭을 일구고 상근 관리인력도 3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백 관장은 "일생을 봉사하신 분들이 쓸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라며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화성/배상록기자 bsr@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