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중 신상옥 감독의 1962년작 '연산군'과 임권택 감독의 1987년작 '연산일기'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천만 관객이라는 흥행 기록을 세운 이준익 감독의 2005년 작 '왕의 남자'가 있다.
'왕의 남자'가 앞의 영화들과 다른 점은 광대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의 시선으로 연산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왕을 풍자하다가 환관 처선의 눈에 띄어 궁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장생과 공길은 왕을 본다. 공길과 장생이 본 연산은 조금씩 다르다. 장생이 본 왕은 광기에 휩싸여 사사로운 복수에 권력을 이용하는 폭군이고, 공길이 본 왕은 내면의 결핍과 상실감으로 위로받기를 원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들의 시선은 분열되어 있다. 그 사실을 잘 파악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장녹수이다. 치마 속을 파고드는 연산을 '우리 애기'라고 부르며 "젖 줄까, 술 줄까"를 질문할 때 젖과 술은 각기 공길과 장생의 시선을 대변하면서 이 둘이 결국 하나임을 말해준다. 젖이 술이 되고 술이 젖이 될 때 왕은 혼군(昏君)이 된다.
우연히 궁에 들어간 민초의 시선으로 권력을 바라보는 이야기 구조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동일하다.
삶의 결이 다른 두 인물 연산과 광해는 공교롭게도 모두 폐위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연산은 폐위되지만 광해는 위기를 벗어나고 폐위는 지연된다. 차이는 진실에 있다. 어떤 진실은 시선에 결박당하고 어떤 진실은 거짓마저도 진실을 드러내는 거울로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의 말미에 연산은 반정으로 폐위된다. 그는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왕이었다. 그러나 젖과 술이라는 그의 진실은 민중의 시선을 감당하기에는 어리고 미숙했다. 왕이라는 자리에 어린아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마 현재에도 유효할 것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