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3∼2014년 발굴조사 중 동쪽 승방으로 보이는 건물터의 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발견한 치미 한 쌍을 3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고대 건물터에서 용마루 좌우의 치미가 한꺼번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왕흥사지 치미는 이 절이 창건된 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양식과 문양으로 볼 때 경주 황룡사지 치미, 부여 부소산 폐사지 치미, 익산 미륵사지 치미 등보다 제작 시기가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왕흥사지 치미는 출토 당시 지붕에서 떨어져 조각난 상태로 땅에 묻혀 있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를 수습해 남쪽 치미는 상부, 북쪽 치미는 하부를 복원하고 삼차원 입체영상 기술로 상하부 전체를 복원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복원 이미지에 따르면 왕흥사지 치미는 높이가 123㎝, 최대 너비가 74㎝이다.
왕흥사지 치미는 전체적인 생김새가 꼬리를 세운 새가 비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연꽃무늬·구름무늬·초화(草花)무늬 등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됐다.
또 몸통과 깃 부분 사이에 있는 기다란 띠인 종대에 연꽃무늬 와당이 박혀 있다. 이 같은 연꽃무늬 와당은 왕흥사지의 전돌과 기와는 물론 부여 시내의 유물에서도 볼 수 있다.
최맹식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치미의 제작 과정에 대해 "흙을 기다란 가래떡처럼 만들어 쌓아 올리는 테쌓기 기법이 치미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됐다"며 "테쌓기는 고대 기와 제작 방식으로, 서울 풍납토성 기와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배병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왕흥사지 치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화려한 치미"라며 "백제 사비 도읍기의 기와 제작기술과 건축기술, 건축양식 등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귀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그는 "왕흥사지 치미는 중국 문화를 백제화한 사례로 신라 황룡사지 치미, 일본 오사카 시텐노지(四天王寺) 치미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배 소장은 "왕흥사지 치미는 전체를 만든 뒤 철사 같은 것으로 잘라 상부와 하부를 따로 구워낸 것으로 판단된다"며 "중국 남조척(南朝尺)의 1자가 약 24.5㎝인데, 이 척도를 적용하면 왕흥사지 치미는 높이가 5자이고 너비는 3자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주로 사찰의 금당(본존불을 안치하는 중심 건물)이나 강당 터에서 나온 치미가 승방 터에서 출토됐다는 것은 당시 승려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개된 왕흥사지 치미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9일 개막하는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에 전시될 예정이다.
부여 규암면에 있는 왕흥사지(사적 제427호)는 사비 백제의 왕궁터로 알려진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에서 보면 금강 건너편에 있다. 지난 2007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장엄구(보물 제1767호)가 출토돼 577년에 창건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