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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영화평론가
화려한 공연도 없고 방송 생중계가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떠들썩한 축하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론사들의 카메라 플래시만이 바쁘게 터지며 시야를 어지럽힌다.

(사)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영평상의 분위기는 시종 차분하고,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평론가들의 심사평과 수상자들의 소감이 단조롭게 이어진다. 지난 8일 개최된 영평상 시상식도 여느때와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에서 주목하는 이유는 이권이나 흥행과 무관하게 오로지 작품성으로만 평가하는 평론가들의 공정성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대종상이 여러 시비에 휘말려 개최 자체가 불투명해지면서 영평상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공교롭게도 올해의 수상작들은 현대인의 부조리한 내면의 풍경에 집중하기보다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무게를 둔 작품이 많았다. '동주'와 '밀정'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강압적이고 황폐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고뇌를 그린 작품이고 '비밀은 없다'는 부도덕한 정치인의 가정이 붕괴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가 하면 '부산행'은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은유적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내부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권력집단의 은밀한 커넥션을 고발한다. 예술이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일반 민중들의 시선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감성과 주관으로 이루어지지만은 않는다. 당대를 바라보는 예민하고 냉정한 시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대중예술로서의 영화는 더욱 그렇다.

이준익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는 '동주'의 대사를 인용하였고, 한 평론가는 '부산행'의 심사평을 전하며 "한 사람 때문에 전국민이 좀비가 되게 생겼다"고 했다.

이 말들은 단지 한두 사건에 대한 촌평은 아닐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 좀비가 득세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예술가와 평론가의 시선을 대변하는 말인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이고 수오지심이다. 부산행 열차라는 공포 가득한 각자도생의 사지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가치는 우리가 곱씹어야 할 화두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