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포장마차 아줌마, 응급환자와 씨름하는 간호사, 24시간 할인점에서 일하는 계산원, 취객들을 실어나르는 택시기사….
소박한 우리네 이웃들에게 해가 바뀌는 순간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묵묵히 있던 자리를 지키면서 새해를 맞을뿐이다.
그러나 지난 한해가 그만큼 힘들고 괴로워서일까? 무던한 이웃들이지만 2006년 새해를 맞이하는 부푼 기대는 감추지 못했다.
▲간호사 나진설(26.여)씨= “새해 꿈이요? 당연히 응급환자 없는 2006년 한해가 되는 거죠”
그는 2006년 1월 1일 0시를 병원 응급실에서 보낸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 젊은 나이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새해라고 응급환자가 없나요?”라며 웃음을 지어보이는 모습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올해로 5년차 중견간호사가 되는 나씨에게 아직도 '응급실 근무'는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연말연시 야간에는 각종 사고 등으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이 난동을 부릴 때도 있어 더욱 힘들다.
하지만 고통을 호소하던 응급환자들이 자신의 손길로 안정을 되찾을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나씨는 “그 순간의 뿌듯함 때문에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캐쉬어 서한석(24)씨= 홈플러스 야간 계산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남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인 자정께부터 일을 시작한다.
밤새 서서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만만찮은 일이지만 서씨는 일부러 야간 근무를 택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서씨가 낮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주독야경(晝讀夜耕)'파이기 때문이다. 서씨는 오전 8시에 일과를 끝내고 아침식사를 한뒤 학원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힘겨운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한창 나이에 연말과 새해를 직장에서 보내는 게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서씨는 “여기(직장)에 친구들, 선배들이 다 있는데요 뭘”이라며 “무엇보다 제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라며 웃었다.
▲포장마차 주인 한진영(48·여·가명)씨=수원 인계동의 유명한 포장마차 주인인 한씨. 항상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아 한씨의 포장마차는 언제나 단골손님으로 발디딜 틈이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1~2천원어치의 튀김과 오뎅을 먹고 가는 취객들이 대부분이지만 한씨의 웃음은 한결같다. 그래서 외상손님은 없어도 1~2만원씩 선불로 내놓고 먹는 '선불 손님'은 많다. 올해로 포장마차를 연 지 10년째가 되는 한씨는 “우리 애들 학비는 다 이놈이 댔죠”라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포장마차를 두들겼다.
▲택시기사 김병준(37.가명)씨= 올해로 택시기사 7년차인 김씨에게 지난 2005년은 좋은 기억보다 씁쓸한 기억이 더 많았던 해였다. IMF직후 운전대를 잡았을때 보다 지난 한해가 더욱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손님은 뚝 떨어지고 LPG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면서 월급외에 여윳돈은 고사하고 사납금 채우기에 급급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가끔 손님들이 정치판 얘기라도 꺼내면 괜시리 욕부터 나오곤 했다.
김씨는 “언론에서 택시 경기 나아졌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다 거짓말”이라며 “연말연시에 그야말로 '빤짝'했을뿐이지 기본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새해에 대한 희망도 숨기진 않았다. “정부에서 보조금도 주고 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겠냐”며 “경기가 살아난다는데, 어이됐든 지금보다 더 나뻐지기야 하겠습니까?”라며 웃음 지었다.
[2006 새해를 여는 사람들] 각자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야죠
입력 2006-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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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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