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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인천아트플랫폼 A동에서 음악감상회를 진행중인 인천 원조 디제이(DJ) 윤효중 씨. 그는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인천 동구 옛 대한서림 건물 '별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로 활동했다. /인천문화재단 제공

9월말 행사 앞두고 갑작스러운 진단
병색 감추고 소박한 멘트 진행 여유
"마이크 잡고 여러분 보면 힘이 나"
객석에 다가가 한명한명 포옹 나눠

"저 멀리 남동구에서 오신 숙녀분에게도 음악 한 곡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동서대약국 사장님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제가 가끔 '활명수' 사러 가면 싸게 해주셨죠."

지난 30일 오후 6시 인천아트플랫폼 A동 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에 중년의 신사·숙녀가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LP 레코드를 재생하는 '턴테이블'과 CDP, '믹서'와 마이크가 설치된 테이블이 무대처럼 있었고, 인천의 원조 디제이(DJ)로 불리는 윤효중(66) 씨가 검은 중절모와 코트, 회색 머플러를 걸치고 테이블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DJ에게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뒤에서 LP와 CDP를 골라 갈아 끼우는 그의 손놀림은 분주했지만, 표정 만큼은 여유로웠다. 화려한 언변은 아니었지만 인천 원조 DJ의 소박하고 담백한 '멘트'에 손님들은 미소 지었다.

이날 행사는 그가 음악과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해안동 아틀리에, 심지 프로젝트'의 마지막 순서였다. 지금은 사라진 동인천역 인근의 음악감상실 '심지'에서 이름을 따온 행사다.

원조 DJ다운 매끄러운 진행에 손님들은 눈치채기 힘들었지만 그는 힘겨워하는 모습을 간간이 보였다. 그는 암 투병 중이었다. 지난 8월 첫 감상회를 마쳤을 때만 하더라도 아무일이 없었는데, 9월 말 행사를 앞두고 의사로부터 암 진단을 받았고 입원했다. 병원에서 잠깐 외출을 나와 진행했고, 이번 감상회도 역시 그랬다.

최근 중환자실에서 시간을 보낸 터라 의사는 이번 감상회 진행을 극구 반대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는 자신을 기억하는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주최 측은 담당 주치의를 만나 조언을 듣고, 혹시나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비상대기조를 짜 두었다. 시간도 1시간여를 줄였다.

윤씨는 "아직 몸이 으스스하지만 그래도 마이크를 잡고 음악을 들으면 용기가 생기고, 여러분의 눈빛을 보면 힘이 난다"며 힘을 냈다.

첫 곡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로 시작해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코튼 필즈', 냇 킹 콜의 '모나리자' 등 10여 곡을 감상했다.

마지막 노래인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잘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든 몸을 이끌고 천천히 객석으로 다가온 그는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하며 포옹을 나눴다.

"세상이 점점 사나워지고 험악해 졌지만, 살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노래를 골랐습니다. 그동안 고마웠고, 고맙다는 말씀 전해드립니다. 한 달 남은 시간 잘 보내시고요. 내년에도 가슴에 희망을 품고 또 사시길, 산사람은 살아야죠. 해피뉴이어!"

그가 남긴 이날의 마지막 인사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