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서구철학은 데카르트(1596~1650)의 이 선언으로부터 시작됐다. 그의 명제에서 생각과 사고 작용의 문제는 칸트(1724~1804)에게, 존재성의 문제는 하이데거(1889~1976)에게, 그리고 이를 구조화하는 언어 논리는 비트겐슈타인(1889~1951)에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은 데카르트의 명제에 가장 충실한 장르다. 추리소설 작법과 인물과 스토리가 그 증거다.
초자연적이거나 불가사의한 작용은 배제돼야 한다(녹스의 추리소설 10계), 범인은 논리적인 연역법에 의해 추론돼야 한다, 살인의 방법과 그것을 추리하는 방식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반 다인의 추리소설 작법 20칙) 등의 규칙은 추리클럽(The Detection club) 소속 작가들이 꼭 지켜야 할 창작의 대원칙이었다.
추리클럽은 G. K. 체스터튼 · 아가사 크리스티 · 로날드 녹스 · 도로시 세이어즈 등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1931년에 결성한 작가들의 모임이다.
추리소설의 모더니티는 등장인물의 면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탐정이나 범인들은 G. 들뢰즈(1925~1995)와 F. 가타리(1930~1992)의 표현을 빌리면 모두 '생각하는 기계들'이었다.
또 완전범죄를 위해 트릭을 상상하고 알리바이를 구성하는 범죄자나 정교한 사고와 추론(ratiocination)으로 난해한 미스터리를 실증적인 논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탐정은 생각하는 인간―즉 코기토(cogito) 그 자체였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주인공 에르큘 포와로는 이성의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팔자수염에 땅딸보인 그에게 '에르큘'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이 단적인 예다. '에르큘'은 헤라클레스(Heracules 또는 Hercules)의 불어식 발음이다. 프랑스에서 에이취(H) 곧 아쉬는 묵음이다.
추리소설 독자들이 에르큘이 바로 헤라클레스의 불어식 발음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않았기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이 은유와 유머를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기실 옛날에는 파워 넘치는 근육질의 남성이 '헤라클레스'였지만,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사회에서는 근육의 힘이 아니라 '이성'과 '사고' 그리고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프랑코 모레티(1950~)는 추리소설을 근대적 이성과 대도시의 산물로 본다. 그의 말대로 '셜록 홈즈 시리즈'의 대다수가 대도시 런던, 특히 웨스트엔드처럼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도심에서 발생한다.
근대소설이 부르주아의 서사시라고 한다면,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설명을 중시하는 추리소설은 이성의 서사시인 동시에 계몽이성의 통속화이다. 이 점에서 추리소설은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근대적 신념의 반영이면서 온갖 범죄와 부작용을 양산하는 근대의 거짓말을 날카롭게 재현하는 사회학적 장르라 할 수 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