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세개의 뿔'
국립공원 지정 후 북한산으로 불려
개국의 영산 빼어난 자연경관 간직
북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 당위성
북한산성이 자리한 삼각산의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명승 제10호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지정 명칭은 '삼각산', 분류는 자연유산 중 자연명승, 지정구역은 27만4천143㎡이고 지정일은 2003년 10월 31일이다.
삼각산은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고 지리적으로는 한양 도성의 진산이었다. 그런 까닭에 고대시대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국가제사의 대상이었다.
또한 삼각산은 한북정맥의 마지막 정점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풍수적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도선, 신경준, 김정호 등 역대 걸출한 역사지리학자들에 의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당으로 손꼽혔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제사를 지낸 후 진흥왕순수비를 세운 곳도 이 삼각산이다. 아울러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왕사 무학대사가 만경봉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도읍터를 정했다는 속설도 있다. 어쨌든 삼각산이 '개국의 영산'임은 분명하며, 삼각산의 등정은 중원을 장악했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현재 명승 삼각산의 지정 구역은 백운대·인수봉·만경대만을 포함하지만, 원래 삼각산은 현재 북한산성이 자리하고 있는 곳, 더 나아가서는 북한산국립공원 지구 중에서 도봉산 지구를 제외한 우이령 남쪽의 산괴를 말한다.
이 북한산성이 자리한 곳을 지금은 북한산으로 부르고 있으나 고려시대와 조선전기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렀다. 고려시대 개경에서 바라볼 때 백운대·만경대·인수봉이 세 개의 뿔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북한산성이 축성된 이후, 산성을 가리킬 때에는 북한산으로, 명산대천의 하나로 국가제사의 대상이 될 때에는 삼각산이라 했다.
또 자연자원이 중심 주제일 때에는 삼각산으로, 인문자원을 서술할 때에는 북한산 혹은 북산(北山)이라 말했다.
이렇듯 원래 삼각산이었으나 북한산성의 축조 이후부터 '북한산'이 혼용되다가, 1915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고적조사보고서'에서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북한산 일대에 대한 유적조사에 대한 결과를 1917년 '경기도고양군북한산유적조사보고서'로 보고하면서 일반적으로 북한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1983년 삼각산과 도봉산 일대를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 명명하게 되면서 삼각산이란 본명은 사라지고 북한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본명 이외에 불리던 일명이 본명을 대신하게 된 셈이다.
따라서 북한산성이 자리한 곳을 지칭할 때에는 '삼각산 북한산성'으로 하는 것이 더 학술적이라 할 수 있다. 북한산은 유개념(類槪念, 전체 개념)이고 삼각산은 종개념(種槪念, 개별 개념)이기 때문이다.
명승 제10호 삼각산을 품고 있는 곳이 사적 제162호 북한산성이다. 그리고 삼각산은 수려한 산세와 빼어난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또 국가제사의 대상이었고 풍수지리적 명당이었으며 한양 도성의 진산으로 숭배되었던 곳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반나절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수도권의 한복판에 있다.
북한산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야 하는 이유이다. 덧붙여 북한산성 전체 면적 527만㎡ 중에서 99.3%인 523만㎡는 경기도 고양시 땅이다. 경기도가 북한산성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드는 데에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