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창영초등학교, 동산중학교,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학창시절에는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인천 고교야구가 청룡기를 제패하는 등 황금기였던 시절에 인천고에서 투수로 활약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에 입학했으나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형(이기성)과 함께 영진공사를 설립해 인천 항만업계에 발을 디뎠다.영진공사는 창립 이후 50년 넘게 인천항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1977년 물류산업 분야 최초로 바레인과 항만 하역 계약을 체결하며 중동에 진출했으며, 40년 가까이 바레인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인은 특히 인천 항만업계의 발전을 위해 힘을 쏟았다. 2003년 '인천항발전협의회'의 초대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당시 제2연륙교(인천대교)의 주경간의 폭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울러 인천항만공사 초대 항만위원장, 인천항만물류협회 회장 등을 맡으면서 인천항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2006년 바다의 날을 맞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역할도 중요시했으며, 인천 정계와 사회단체, 체육계에서도 많은 일을 했다. 인천시의회 초대 의장을 역임했으며,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인천시 야구협회 회장과 인천시 체육회 부회장을 맡으면서 인천 프로축구단 창단에도 기여했다.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매년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빈소는 가천대 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1일 오전이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