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시대 무덤 500여기 분포
출토 유물중 1500여점 국가 귀속
오산시 박물관 추진 반가운 행보
백제시대 경기도 서남부 지역, 특히 수원·화성·평택·안산 등지의 행정 거점은 어디였을까?
또 삼국 시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있던 5세기 말엽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때까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매홀(買忽)'은 과연 어디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대부분의 백과사전류에서는 지금의 수원을 '매홀'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설은 오산 수청동 유적(烏山 水淸洞 遺蹟)이 발굴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산 수청동 유적은 세교신도시를 개발하면서 발굴된 유적으로 경기문화재연구원이 지난 2005년 11월에 착수하여 2008년 12월에 완료했다.
발굴 결과 한성백제시대의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 지하에 움을 파서 무덤칸을 만들고 무덤 주변에 도랑을 돌린 토광묘의 한 형식)가 330여 기 확인되었는데, 이미 파괴된 무덤과 공원지역으로 지정돼 조사가 이뤄진 무덤들을 합해 총 500여 기의 무덤이 약 9만9천㎡의 범위 내에 밀집 분포하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아 국가에 귀속된 것만 해도 1천567점이었는데, 기원전 3세기 후반부터 5세기 후반까지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또 167기의 무덤에서 총 7만 6천여 점의 구슬이 출토돼 "마한 사람들은 구슬을 보배로 삼았는데 옥구슬로 옷을 치장 하거나 목걸이와 귀걸이를 사용했으며, 금·은·비단은 보물로 여기지 않았다"고 기술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을 입증해 줬다.
이외에도 경기지역의 백제 무덤에서는 아주 드물게 출토되는 갑옷과 마구가 함께 출토됐으며, 백제의 무기 체제를 밝힐 수 있는 대도, 철모, 화살촉 등의 무기류가 다량으로 수습됐다. 특히, 중국 동진(東晋)에서 제작된 청자반구호와 금동제 화살통이 발견돼 이 수청동 유적의 정치적 위상을 가늠케 해줬다.
오산 수청동 유적은 우리나라 최대의 백제고분군이다. 또 그 조성기간이 250년 이상이나 되고 다종다양한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돼 백제의 문화상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고고학적 정보를 제공해 줬다.
아울러 학술적으로는 백제의 묘제와 편년을 설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줬고, 삼국시대 유리의 제작방식과 사용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그리고 삼국시대 경기 서남부의 중심지역이 오산 수청동 일대일 가능성이 타진됐고, 이를 통해 문헌 속의 '매홀'이 지금의 수원지역이 아니라 오산지역일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판단은 유적지 주변 일대에 매홀초등학교와 매홀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사실, '매'의 의미가 물과 연결되고 유적지가 자리한 곳이 수청동이라는 점, 바로 인접해 독산성이 자리하고 읍치(邑治)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실 등으로 뒷받침된다.
이렇듯 오산 수청동의 세교신도시 일대는 삼국시대 경기 서남부 지역의 행정 거점이었고, 그것은 오산 수청동에서 출토된 유적과 유물이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런데 발굴이 완료된 이후 수청동 유적의 존재는 희미해졌고, 출토 유물을 포함한 고고학적 자료들은 사장(死藏)의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 오산시가 오산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관·전시하기 위한 박물관 건립을 계획하고, 그 공감대 형성을 위한 공청회를 지난 9일에 개최했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이를 계기로 수청동 출토 유물이 빛을 발해 진정한 경기도의 문화자산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경기도가 '한성백제의 바탕'이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됐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