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슈퍼 강도·약촌오거리 살인사건
피고인 무죄 선고로 재판결과 뒤집어
1만8천명 기부 '파산 인생' 전환점
지난해는 가히 '법조 비리의 해'라고 할 만 했다. 전관예우를 이용해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비호한 최유정·홍만표 변호사와 검찰 창설 이래 처음으로 현직 검사장 구속 사태를 일으킨 진경준 전 검사장, 성매매 부장판사, '최순실 게이트' 과정에서 불거진 검찰의 각종 비위까지 온갖 사법 비리가 일년 내내 신문지면을 수놓았다.
한편에선 법원이 스스로 선고한 재판 결과를 연이어 뒤집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0월 28일 광주고법은 일명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은 3인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이어 다음달 17일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의 피고인에게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이미 죗값을 치른 피고인들이 끝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의 무죄를 믿었던 한 명의 변호사가 있었다. 박준영(43)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재심 전문 변호사'라 불렸던 그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바로 '국민 변호사'라는 애칭이다. 지난 8월 파산을 선고하며 그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은 8월부터 11월까지 1만8천명의 자발적인 기부를 이끌어 냈다.
"지난 여름에 파산을 선언했습니다. 재심 사건만 맡다보니 일반 사건 수임을 할 수 없었고 결국 빚만 쌓이게 됐죠. 1억원을 모아 당장 위기를 좀 모면하자고 시작했는데, 11월까지 5억6천만원이 모였습니다. 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인터뷰 요청은 쇄도했고 방송까지 출연할 수 있었죠. 제 삶의 큰 전환점이 됐던 한 해였습니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나도 억울하다'는 재소자·전과자의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집중해야 할 사건이 이미 경상도에 2건, 충주에 1건, 포천에 1건 있습니다. 혼자 해왔던 작업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할 동료가 필요한 시점이 됐죠."
내년부터 박 변호사는 뜻이 맞는 2~3명의 변호사와 함께 재심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단체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수원의 개인 사무실을 떠나 서울에 공동 사무실을 꾸리기로 했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박 변호사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잘 해야죠. 재심이라는 문제가 사회적 공감이 됐다는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하고,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박 변호사는 겨우내 부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저는 원래 사무실이나 법원에만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경상도에서 경기도까지 장소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억울한 사람을 찾아 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사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