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말 말살' 특별좌담회 게재도
대중일보는 해방 후 첫해인 1946년 1월 1일 신년호에 '사수하자 조국 단결하라 삼천만'이라는 제목의 고주철 대중일보 사장 연두사를 비롯, 임홍재 인천시장, 조경승 인천법원검사 등 기관장의 연두사를 실었다.
조경승 인천법원검사는 "연합군의 선봉으로 해방은 됐지만, 대원군 시대와 다름없이 중대한 능욕을 당하고 있는 처지임을 생각해야 한다"며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생물적 신념에서 한걸음 나아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건국의 예망(譽望)을 갖고 삼천만이 모두 조선에 충실한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중일보는 해를 거듭하면서 신년호의 외연을 넓힌다. 1947년부터 신년호 발행 면수를 2개 면에서 4개 면으로 늘려 발행했다.
또 이승만, 김구 등 사회 지도층은 물론, 인천시장, 인천 군정장관, 인천 우편국장, 경성지방법원 인천지청 판사, 인천 경찰서장, 인천 세무서장, 인천 박물관장 등 인천지역 기관장의 연두사를 1면 등 주요 면에 배치했다.
제헌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5·10 총선거를 앞둔 1948년 신년호에선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백범 김구의 글도 볼 수 있다. 그는 "농민은 농촌에서, 노동자는 공장에서 생(生)을 찾아 신음하고 도시 세궁민(細窮民)과 소시민은 물가의 광등(狂騰)과 식량난에 울고 있지만, 탐관(貪官)과 모리배의 간행(奸行)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여하한 환경 중에 있을지라도 절대 자유의사에 의하여 우리가 믿는 양심분자를 우리의 대표로 선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의 비애는 의연히 소멸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중일보는 신년호에서 '말살하자 왜말, 바로잡자 우리말', '무자 신춘의 향토 건설' 등을 주제로 한 전문가 특별 좌담회를 열어 해법을 모색했고, 예술계, 언론계 등의 지난 1년을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경성 인천박물관장은 1948년 1월 1일자 '인천예술계의 회고'라는 글에서 "서울이 가까워 특수한 향토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어 문화적으로 저급한 인천에서 고급 예술은 보이콧 당하고 있다"며 "현재 인천에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은 있어도 소위 예술가는 없고, 설혹 있다 하더라도 예술활동을 정지한 휴화산적 존재"라고 비판했다.
이어 "인천의 예술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식해 내일의 대비를 했으면 한다"고 했다.
대중일보는 쥐와 소, 호랑이 등 각 해를 상징하는 동물과 관련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 신년호에 싣기도 했다.
/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