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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영화평론가
체육관 좌석이 빼곡하다. 그들은 회원이다. 곧 저축은행을 인수할 네트워크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이며, 고수익을 꿈꾸는 소시민들이다. 그들 한가운데서 사내가 연설한다. 그는 세련되지만 진솔하다.

사람들은 그가 흘리는 눈물에 감동하고, 그가 보이는 자신감에 환호한다. 약속받은 미래가 이미 도래한 듯하다. 누구도 그가 잠적하리라 예상하지 못한다. 함성과 함께 마비된 이성이 출렁인다.

'천공의 눈'(Eye In The Sky, 2007)을 리메이크한 '감시자들'로 주목을 받은 조의석 감독이 이병헌과 강동원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을 앞세워 복귀했다. 희대의 사기꾼 진회장, 그리고 그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재명과 박장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액션은 화려하고 두뇌싸움은 치밀하다. 그러나 진회장의 캐릭터는 과시적이고, 김재명은 평면적이다.

세 인물을 배려한 군더더기 덕에 러닝타임이 늘어지는 것도 흠이다. 게다가 현실이 픽션을 넘어선 시대에 진회장의 범죄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놈들 선을 넘었어. 나라고 못 할 거 같아?"라는 김재명의 외침이 픽션을 앞서가는 현실을 뒤쫓는 영화의 자조적 탄식처럼 들리는 것은 뉴스가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시대의 비극일 것이다.

진회장이 운하를 미끼로 6조를 들먹이고 2조를 은닉할 때 우리는 이미 써버린 22조와 독일 어딘가에 잇다는 10조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말미 체포 직전 진회장은 "어디다 전화를 해야 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통화를 시도한다. 이미 그는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해왔다. 그의 수하는 물론이고 변호사와 법조계 인사, 고위 관료들이 그의 통화 대상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진회장 사기의 중심에는 돈이 아니라 전화기가 있었다. '원 네트워크'라는 기업명은 어쩌면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인적 네트워크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장르적 클리셰를 현실의 클리셰가 대체해 버린 시대에 '마스터'는 너무 늦게 온 듯하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