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전기 범종연구 학술적 가치
스님도 새겨… 국내 유일 마애종
공장터에서 '안양사지'도 발굴돼
김중업 작품건물 '박물관화' 독특
우리나라 지정문화재 가운데 불교문화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는다. 이들 중에서 학술적 가치가 빼어난 것도 있지만, 일반인이 볼 때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석탑의 경우 특별한 양식을 갖춘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그런 것들이 흔하다. 경기도 지정문화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라는 명분론을 빼고는 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다소 미흡한 것들도 있다.
그에 비해 국가문화재로 승격해도 손색이 없는 것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오늘 소개할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안양 석수동 마애종(安養 石水洞 磨崖鐘)'이다. 안양예술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데, 넓적한 바위에 종과 종각, 그리고 종치는 스님을 새겼다.
구체적으로 종은 사각형의 목조 결구에 쇠사슬로 매달아져 있으며, 윗부분에는 용의 몸체와 머리를 형상화한 용뉴와 중국종에는 없는 음향조절 기능의 음통(音筒)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몸통에는 사방구천(四方九天, 땅과 하늘)을 상징하는 유곽과 종유, 연화문 당좌, 종 아래 부분의 하대(下帶) 등이 치밀하게 새겨져 있다.
한편, 종각의 기둥 위에는 화반(花盤)과 구름무늬를 중앙과 좌우에 새겨 단조로움을 피했다.
이 마애종의 압권은 종매(타종 막대)를 잡고 종을 치려는 스님의 모습이 있는 점이다. 발까지 내려온 법의와 오른쪽 어깨에 걸쳐 입은 가사를 아주 섬세하게 표현했으며, 종각 속의 종과 일체가 되어 생동감을 더한다.
이 마애종은 고려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스님의 조각으로 당대 법의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종매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점 등에서 특별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이 유적은 현존하는 마애종으로는 국내 유일의 것이다. 그만큼 희소성이 빼어나다. 또 종의 세부 표현이 치밀하여 고려시대 범종 연구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있는 풍경'이기에 정감이 간다.
해질 무렵 1000년 전 은은한 종소리가 울리는 산사로 우리를 안내하기에 여타의 불교문화재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흥을 자아낸다.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차분한 느낌을 자아내기에 예술 작품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이 마애종은 '안양 석수동 마애종'이란 이름으로 문화재 지정이 되었지만, 이제는 '안양사지 마애종'이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부여해야 할 듯하다.
이 마애종이 자리한 안양예술공원 내의 구(舊) 유유산업 부지에서 '안양사(安養寺)'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고려 태조 왕건의 후원으로 창건되었다는 안양사의 위치가 확인되었고, 이 마애종이 안양사 권역에 속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안양사지 마애종'의 답사를 권한다. 안양시가 마애종이 속한 안양사지 권역을 유유산업의 이전 이후 부지를 매입하여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놓았기 때문이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중심 사역의 면모가 드러난 안양사지가 정비되어 있고, 그곳에서 확인된 고고학적 정보와 출토유물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또 안양사 창건 이전에 있었던 중초사의 당간지주(보물 제4호)와 3층 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를 대표하는 김중업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김중업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그와 그의 작품도 맛볼 수 있다. 참고로 이 박물관 건물은 유유산업의 건물 일부였던 김중업의 작품 자체를 리모델링한 것으로, 그가 설계한 유일한 공장건물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
'안양사지 마애종'은 안양사지가 발굴되었기에 그 가치가 배가되었다. 그리고 이런 성공은 안양시의 선진적 문화행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후화된 산업시설에 대한 이 좋은 사례는 우리가 앞으로 문화유산을 어떻게 대하고, 활용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점도 관람 포인트 중의 하나이니, 답사 시 염두에 두고 생각거리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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