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내 음악 감상실 5곳 마련… 진공관 오디오·아날로그 스피커 통한 색다른 소리 전해
300석 규모 공연장 '엘림홀' 최고 시설에 파이프 오르간도 설치 다양한 무대 기회 제공
숙박·레저 등 연계사업도 구상… 많은 이들에게 음악 통해 새로운 기쁨 선물하고 싶어
이 엘림아트센터를 운영하는 회사인 엘림존의 이현건(59) 대표이사를 찾아가 만났다. 그는 "하루하루 바쁘게만 살아온 많은 이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짜릿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취재진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이 대표이사는 마음이 급해 보였다. 그만큼 보여줄 것, 느끼게 해줄 것이 곳곳에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건물 3개 층을 쓰고 있는 엘림존을 모두 감상하려면 갈 길이 멀다"며 음악감상실부터 서둘러 안내했다.
기계공학 전공 연 매출 300억대 밸브 제조회사 일군 후 새인생 위해 청라에 전문 공연장 세워
한번에 10~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오디오갤러리)은 모두 5곳이 마련돼 있다. 이 음악감상실에는 1930~40년대 미국 극장에서 주로 사용했다는 '웨스턴 일렉트릭 사운드 시스템(Western Electric Sound System)' 상표가 붙은 스피커와 진공관이 보이는 앰프, 턴테이블 등이 설치돼 있었다.
미국에서 많이 쓰던 웨스턴 일렉트릭의 스피커는 극장에 불이 자주 나고, 오래된 건물이 철거되면서 함께 소실되는 경우가 많아 지금은 보물처럼 여겨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가 연주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려주며 "웨스턴 일렉트릭의 스피커에서는 '찐득한' 소리가 난다"고 표현했다. 최근 이곳을 찾았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감상하고는 "연주자들의 운지와 활을 쓰는 방법도 느껴진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했다.
이곳 음악감상실에 설치된 오디오 장비들은 그가 기업을 운영하며 여유가 생길 때마다 하나둘 수집해온 것들이라고 한다.
"옛 진공관 오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으면 아주 좋아요. 근데 요즘 사람들은 가청 주파수 범위에서 만든 디지털 음악에 길들여 있어 많이 아쉬워요. 아날로그 스피커로 듣는 음악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죠. 요즘 스피커들은 수천 와트의 전기가 필요하지만, 이 오디오들은 전력 소모도 많지 않아요."
그는 스피커가 필요 없이 연주자들의 음악을 어쿠스틱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는 엘림아트센터의 핵심 공간인 300석 규모의 공연장 '엘림홀'로 안내했다.
이 엘림홀에서는 지난 12월 9일 개관 이후 최근까지 ▲정경화 바이올린 독주회 ▲프랑스 삭쎌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신동일 파이프 오르간 콘서트 ▲양성원과 레봉벡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임동혁 피아노 독주회 등으로 꾸며진 '개관 페스티벌'이 진행됐다.
그는 처음 홀을 만들고자 했을 때 어떤 크기로 지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든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하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적당한 크기인 300석 규모로 지었다.
그는 이 엘림홀을 최고로 꾸미기 위해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등의 작업을 했던 전문 회사에 맡겼다. 앞좌석과 뒷좌석의 간격도 넓었고, 의자도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반영한 편안한 의자가 설치됐다. 실내는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했다.
바닥에 온돌을 설치해 공연장에 온풍기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소음의 방해 없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홀 중앙에서는 인천에서 보기 힘든 파이프 오르간도 만날 수 있다. 독일 'Gerald Woehl'사가 만든 이 파이프 오르간은 설치하고 소리를 수정하기까지 9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그는 공을 들였다.
그는 "인천을 포함한 전국에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는 공연장이 많지 않아 늘 아쉬웠다"며 "다양한 음악과 연주자를 소개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 정도 시설을 운영하는 단체의 대표라고 하면 흔히들 클래식 전문가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클래식과는 무관한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기업인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체나 기체의 흐름을 제어하는 밸브 제조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 이 분야 부품의 국산화 작업에 30년간 매달려왔다.
그러다 지난 2013년 그의 성공을 눈여겨본 영국계 회사가 회사 매각을 제의해왔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회사였지만 그는 새 인생을 살아보기로 하고 매각에 응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태어나서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새 은퇴를 앞두게 돼요. 저도 평생 일만 하며 살아왔죠. 그런데 그때가 되면 인생을 즐기기 힘든 나이가 되어버리죠. 많은 이들에게 여유와 휴식이 필요해요."
'엘림'은 성경에 나오는 지명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모세와 함께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 후 두 번째로 진을 쳤던 곳으로 12개의 샘물과 70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던 오아시스다.
지금은 휴식을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쓰인다. 그는 이 엘림존을 통한 음악 공간뿐 아니라, 이와 연계할 수 있는 숙박, 레저 등 사람들에게 휴식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작은 사업들도 구상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요. 이러한 최고의 음악, 최고의 예술을 경험하고, 또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된다면 바랄 게 없습니다. 하나씩 구상해 나가겠습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1958년 7월 서울 출생
▲ 1977년 서울 남강고 졸업
▲ 1982년 홍익대 정밀기계 졸업
▲ 1984년 홍익대 대학원 정밀기계 졸업
▲ 1985년 신우공업(주) 입사
▲ 1995년 신우공업(주) 부사장
▲ 1995년 신우공업 부설 기술연구소 소장
▲ 1999년 (주)CCI 부사장
▲ 2001년 (주)영텍 법인 설립
▲ 2014년 (주)영텍, ROTORK(英)에 매각
▲ 2016년 엘림아트센터 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