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릉 내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과 그의 신도비
구리 동구릉 내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과 그의 신도비, 건원릉의 봉분에는 조선 왕릉 중에서는 유일하게 잔디가 아닌 억새풀이 심겨져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공민왕릉 영향… 곡장·석물 변화
봉분등 후대왕들과 차이 '과도기'

건립당시 원형 잘 간직한 신도비
미술사적·학술적인 가치 뛰어나

세계유산 조선 왕릉 40기 중에서 31기가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9기는 구리 동구릉 내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동구릉은 조선 왕릉을 대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동구릉에는 태조의 능인 건원릉(健元陵), 5대 문종과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현릉(顯陵), 14대 선조와 의인왕후(懿仁王后)·인목왕후(仁穆王后)의 능인 목릉(穆陵), 21대 영조와 정순왕후(貞純王后)의 능인 원릉(元陵) 등을 포함한 능 9기가 있고, 그곳에는 17위(位)의 왕과 후비가 영면하고 있다.

이렇듯 동구릉에는 조선 전기, 중기, 후기를 대표하는 왕릉들이 있어 조선 왕릉의 변천사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조선 왕릉의 규범이 된 건원릉이 있어 명실상부 조선 왕릉의 대표격이다.

건원릉의 조영을 담당한 사람은 박자청인데, 그는 공민왕릉과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을 만들었던 김사행의 제자였다. 이런 사실은 건원릉이 고려 왕릉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공민왕릉의 양식을 본받아 축조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 한편 왕릉의 예법과 절차를 규정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가 1474년(성종 5)에 완성된 사실을 감안하면, 건원릉은 고려왕릉의 양식에서 조선왕릉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건원릉은 고려 왕릉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거기에 새로운 요소가 더해졌다. 구체적으로 건원릉은 병풍석의 무늬나 문인석·무인석 등의 양식에서 고려 공민왕릉의 영향이 보이지만, 봉분 주위로 곡장을 새롭게 돌린 점, 석호와 석양의 배치에 변화를 준 점, 장명등 등 석물의 양식과 문양에 새로운 요소가 가미된 점 등이다.

한편 건원릉은 이후 다른 왕릉과 비교할 때, 혼유석의 고석(鼓石)이 5개인 점, 석양과 석호가 다른 왕릉과 달리 배와 다리 사이가 메워져 있지 않는 점, 건원릉 정자각 위 오른쪽에는 다른 능과 달리 배위가 자리하고 있는 점,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 점, 봉분에는 잔디가 아닌 무성한 억새풀이 덮여 있는 점 등에서 차이가 보인다.

참고로 건원릉이 억새풀 봉분인 것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하여 함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로 봉분을 만들었기 때문이라 전한다.

태조의 신도비는 거북이 형상의 귀부에 비석을 올리고 그 위에 4마리의 용을 새긴 이른바 귀부이수형이다. 그리고 화강암으로 조각된 귀부는 수많은 연잎이 거북이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며, 귀부를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는 연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건원릉 신도비는 조선시대 왕릉에 건립된 최초의 신도비이며 양식과 장식이 화려하고 장엄하여 미술사적으로 빼어난 작품이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또 현존하는 왕릉 신도비 중에서 유일하게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조선 시대 사대부 신도비의 모본(模本)이 되고 있기에 학술적 가치가 남다르다. 참고로 조선시대 왕의 신도비는 세종까지만 건립하고, 그 이후부터는 왕의 생애와 치적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는 이유로 왕릉에는 신도비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동구릉은 다른 조선 왕릉과 마찬가지로 도심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개방시간도 새벽 6시부터여서 언제나 가볼 수 있고 수목이 우거진 평탄한 산책길을 제공하기에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또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이 하루 3차례 있고, 초입에 '동구릉 역사문화관'이 있어서 조선 왕릉과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휴재 공지>경인일보와 경기문화재단 문화유산본부는 지난 2015년 6월 30일부터 오늘까지 '경기도 문화유산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총 80회에 걸쳐 경기도의 문화유산 중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거나 경기도의 고유성을 밝힐 수 있는 유적을 선택하여, 그 내용과 가치를 매주 소개해 왔습니다. 그러나 경기문화재단 내부 사정상 연재가 당분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연재에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후일 연재가 속개될 때에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친근성과 가독성을 한층 더 갖추어 독자 여러분을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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